90년 후 현실이 된 쥘 베른 해저 2만 마일의 평행이론: 미 해군 핵잠수함의 명명 비화
1870년, 유럽의 독자들이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신작 소설 『해저 2만 마일(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을 펼쳤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당대 과학기술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미래의 청사진이었다. 소설 속 네모 선장이 이끄는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이중 선체, 정교한 수중 항해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무한에 가까운 동력을 자랑했다. 당시 잠수함은 겨우 수면 아래 몇 미터를 기어 다니는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증기나 배터리 동력으로 짧은 시간만 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틸러스호는 수만 마일을 항해하며 해저 세계를 탐험했다. 이처럼 소설이 그린 잠수함 기술적 예측은 단순한 허구적 장치를 넘어, 인류가 도달해야 할 과학적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노틸러스호의 동력원은 쥘 베른의 경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노틸러스호가 ‘전기’를 이용해 움직인다고 설정했는데, 이는 당시의 전지 기술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대용량 에너지원이었다. 이는 사실상 20세기 중반에야 개발될 핵분열 에너지를 문학적으로 예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세기 문학이 설계한 완벽한 잠수함의 청사진
쥘 베른은 『해저 2만 마일』을 쓰기 위해 당대의 최신 과학 지식을 철저히 연구했다. 노틸러스호의 설계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었다. 선체는 방수 격벽으로 나뉜 이중 선체 구조로 묘사됐는데, 이는 현대 잠수함의 표준 설계와 일치한다. 또한, 부력 탱크를 조절해 잠항과 부상을 제어하는 방식, 수중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시스템, 그리고 수심을 측정하는 정교한 계측 장비 등은 1870년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실용화되지 않았던 기술들이었다.
베른은 노틸러스호가 ‘바닷물에서 추출한 나트륨’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고 설정했다. 이는 당시 과학자들이 꿈꾸던 무한 동력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 정도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훗날 핵에너지로 밝혀진다. 쥘 베른은 원자력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지만, 잠수함이 장기간 해저에서 독립적으로 작전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를 태우는 방식이 아닌, 압도적인 밀도의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간파했다.
이러한 기술적 묘사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모험담 이상의 충격을 줬다. 소설 속 묘사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노틸러스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문학이 과학 발전의 촉매제가 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당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선 노틸러스호의 무한 동력
노틸러스호의 가장 혁명적인 요소는 바로 동력원이었다. 19세기 후반의 잠수함들은 주로 배터리나 증기기관에 의존했기 때문에 작전 반경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로 인해 잠수함은 해군 전력에서 주변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노틸러스호는 수개월 동안 해저에 머물며 전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이는 곧 동력 공급의 제약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쥘 베른이 묘사한 무한에 가까운 동력은 90년이 지난 1950년대에 현실화됐다. 미 해군은 1954년 세계 최초의 핵 추진 잠수함인 ‘USS 노틸러스(SSN-571)’를 진수했다. 핵잠수함은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사용함으로써 공기 흡입이나 연료 보급 없이 수십 년간 해저를 항해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쥘 베른이 상상했던 노틸러스호의 운용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혁명이었다.
미 해군이 이 역사적인 핵잠수함에 쥘 베른의 소설 속 이름을 붙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는 소설 속 상상이 현실의 기술적 성취를 이끌어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였다. 쥘 베른의 상상력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류가 추구해야 할 기술 발전의 이정표 역할을 해냈다.

소설 속 상상이 현실이 된 ‘평행이론’의 완성
쥘 베른의 예언이 현실이 된 사례는 잠수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달 탐사(『지구에서 달까지』), 우주 정거장, 비행기 등 수많은 미래 기술을 예측했다. 하지만 노틸러스호의 사례는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평행이론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소설 속 노틸러스호가 1860년대 후반에 건조된 것으로 설정된 반면, 실제 핵잠수함 USS 노틸러스호는 1954년에 진수됐다. 약 90년의 시차를 두고, 문학적 상상과 과학적 현실이 이름까지 공유하며 만난 것이다.
이러한 평행이론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문학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쥘 베른은 당대의 기술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자란 세대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실제로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유산은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USS 노틸러스호의 성공적인 운용은 냉전 시대 해군 전략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으며, 이는 쥘 베른이 상상했던 해저에서의 무한한 독립 작전 개념을 그대로 실현한 결과다. 쥘 베른의 상상력은 단순한 이야기꾼의 재능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과학적 통찰력의 발현이었음이 증명됐다.
과학적 상상력이 제시하는 미래 기술의 방향성
쥘 베른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공지능, 우주 탐사, 생명 공학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여전히 중요한 동력이다. 소설 『해저 2만 마일』은 단순한 고전 소설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 예언서로 자리매김했다. 네모 선장의 노틸러스호가 해저를 누볐던 것처럼, 인류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판 삼아 미지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결국 쥘 베른의 이야기는 과학적 상상력이 현실의 기술을 얼마나 강력하게 견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의 소설은 미래 기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동시에, 인간의 탐험 정신이 시대를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