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강요와 음주 권유 등 즐거운 송년회가 직장 내 괴롭힘이나 산업재해로 번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다가오면 기업들은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조직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송년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해진다. 하지만 ‘부어라 마셔라’ 식의 구시대적 회식 문화는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에는 회식이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 노동법적 분쟁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참석 강요부터 음주로 인한 사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까지, 자칫하면 즐거워야 할 자리가 법적 다툼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송년회 시즌을 맞아 기업과 근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노동법적 쟁점들을 알아본다.

업무의 연장인가, 단순한 친목인가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송년회 참석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가”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예민한 사안이 됐다. 만약 송년회가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면,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시간에 대해 사용자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계약상의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고용노동부는 기본적으로 회식을 노무제공과 무관한 조직 결속 및 친목 강화 활동으로 보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회식이 근로시간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강제성’ 여부다. 사용자가 참석을 지시했거나, 불참 시 인사상 불이익이 암시된 경우, 혹은 실적 평가나 교육 등 업무상 의무 활동이 회식 중에 이루어진다면 이는 근로시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반면, 참석 여부가 전적으로 근로자의 자율에 맡겨져 있고 불참에 대한 불이익이 없다면 이는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즉, ‘눈치껏 참석해야 하는’ 분위기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질적인 강제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김진환 법무법인 지금 파트너변호사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회식의 성격에 대한 법적 다툼이 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송년회 공지 시 ‘필참’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불참 사유를 집요하게 묻거나 징계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임금 체불 이슈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와인을 마시기 전 건배: 독살을 막으려던 중세 유럽의 섬뜩한 관습이었다.
‘술 권하는 사회’는 옛말, 음주 강요는 명백한 괴롭힘
송년회 자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단연 ‘직장 내 괴롭힘’이다. 과거에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으나, 현재는 명백한 위법 행위가 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에서의 지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원은 부서 책임자가 부하 직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음주를 강요한 행위를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특히 대법원은 개인의 주량, 종교, 신념 등에 따라 음주에 대한 거부감이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하며, 상사의 태도가 강압적으로 느껴진다면 이는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음주 뿐만 아니라 ‘2차 강요’나 ‘귀가 저지’ 또한 징계 사유가 된다. 실제로 새벽까지 이어진 송년회에서 “무조건 남아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먼저 귀가한 직원을 다음날 공개적으로 비난한 팀장의 행위에 대해 법원은 정당한 징계 사유라고 판단했다. 이는 회식 참여 여부와 귀가 시간 결정권이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에 속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들뜬 분위기 속 안전사고,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은
송년회 도중이나 귀갓길에 발생한 사고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 중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이때 판단의 기준은 행사가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었는가’이다.
회사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전 직원이 참여하는 공식 송년회라면 업무상 재해 인정 가능성이 높다. 반면, 부서원끼리 자발적으로 모여 각출한 회식(친목 모임)에서 발생한 사고는 인정받기 어렵다.
주목할 점은 과음으로 인한 사고다. 법원은 과음이 주된 원인이 되어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사업주가 만류하지 않았거나 분위기상 과음을 피하기 어려웠다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3일 연속 회식 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2차 회식 후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나 사적인 행위를 하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만취하여 비상구를 화장실로 오인해 추락하는 등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친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부정되기도 한다.
최청희 법무법인 C&E 대표변호사는 “송년회 시즌은 일년 중 산재 신청이 급증하는 시기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사용자는 회식 장소의 안전성을 미리 점검하고, 귀가 시 대리운전비나 택시비를 지원하는 등 근로자가 안전하게 귀가할 때까지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단순히 자리를 마련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귀가까지가 송년회의 연장선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년회는 한 해의 땀방울을 닦아주고 서로를 위로하는 따뜻한 자리여야 한다. 하지만 준비 없는 송년회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법적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자율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술을 강권하지 않는 건전한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근로자 또한 동료를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법적 쟁점을 떠나,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될 때 비로소 송년회는 ‘분쟁의 불씨’가 아닌 ‘화합의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성이 없는 나라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족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과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