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료 보상체계 “단순 수가 인상만으로는 지방 의료 소멸 막을 수 없어”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수도권 쏠림 현상과 지방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속에 신음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으로 대변되는 필수의료 공백은 이제 수도권을 넘어 지방에서는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 지 오래다. 정부가 다양한 수가 가산책과 지원 사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2일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현행 보상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지역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보상의 목적을 ‘안전망 확보’와 ‘형평성 제고’로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획일적 수가 제도의 한계, 소멸하는 지역 의료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수가는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한다. 의료 행위의 양(Volume)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인구가 밀집하고 환자가 많은 수도권에서는 수익 창출이 가능하지만, 인구가 급감하는 농어촌 지역에서는 구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 환자가 없으면 수익이 없고, 수익이 없으면 병원 운영이 불가능해 폐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실제로 최근 경남, 양산, 김해 등지에서 지역 거점 역할을 하던 병원들이 경영난과 인력 확보 실패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이나 분만취약지 가산제도 등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지원책들이 목적을 혼재한 채 운영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예산 지원형, 수가 보완형, 수가 대안형 등 다양한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것이 해당 지역의 ‘의료기관 생존’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것인지 명확한 구분 없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 방식은 ‘취약지’라는 행정구역 중심의 접근에 머물러 있다. 단순히 특정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산을 주거나, 반대로 진료권역은 취약한데 행정구역상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각지대도 발생한다. 무엇보다 수요 자체가 극히 드문 지역에 ‘진료 건당 가산’을 해주는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 분만 건수가 ‘0’에 수렴하는 지역에서 분만 수가를 200% 인상해 준들, 의료기관의 적자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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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불분명한 ‘백화점식’ 지원, 정책 효율성 저하 우려
보고서는 국내 정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 ‘정책 목표의 불명확성’을 꼽았다. 현재 소아, 분만, 중증·응급, 인공신장 등 필수의료 영역에 대해 다양한 보상 기전이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분만 영역의 경우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예산), 분만취약지 가산(수가), 분만 정책수가(공공정책수가) 등이 중첩되어 있다.
물론 중복 지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각 정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책은 의료기관이 문을 닫지 않게 하는 ‘유지’가 목표여야 하고, 어떤 정책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유인하는 ‘질 개선’이 목표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안전망 확보(최소한의 기능 유지)와 형평성 확보(지역 간 서비스 격차 해소)가 하나의 제도 안에 뒤섞여 있다. 이로 인해 정작 생존 지원이 절실한 곳에는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고,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불필요한 재정이 투입되는 비효율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안전망 확보가 우선인 지역의 경우 기본적인 진료 수요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가산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진료량이 적은 곳에는 ‘건당 수가’가 아닌 ‘운영 손실 보전’ 방식의 접근이, 진료 수요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곳에는 ‘성과 기반 인센티브’가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해외 사례의 교훈, ‘생존’과 ‘운영’을 분리해 지원
해외 주요국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보고서가 분석한 일본과 미국의 사례는 ‘목적에 따른 명확한 재원 및 방식의 구분’이라는 시사점을 준다.
일본의 경우 의료취약지 대책을 ‘안전망 유지’와 ‘형평성 보정’으로 명확히 나눈다. 수익만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불채산 지구 병원’이나 공립병원에 대해서는 지방교부세를 통해 적자를 보전해 준다. 이는 철저히 행정적·재정적 지원의 영역이다. 반면, 지역 간 의료비용 차이나 기능 수행에 대한 보상은 진료보수(수가) 가산으로 해결한다. ‘지역가산’, ‘낙도가산’ 등이 이에 해당하며, 단순히 지역에 위치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지역의료지원병원’과 같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가산을 차등 적용한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메디케어(Medicare) 수가 산정 시에는 ‘지역보정지수(GPCI)’를 적용해 지역별 임금이나 임대료 등 비용 차이를 반영한다. 이는 형평성을 위한 조치다. 반면, 저소득층 진료 비중이 높거나 농촌 지역에 위치해 재정적으로 취약한 병원(Safety-net hospitals)에 대해서는 메디케이드(Medicaid)의 별도 기금을 통해 손실분을 직접 보전해 준다. 즉, 시장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안전망’ 영역은 공공 재정으로 직접 떠받치고, ‘형평성’ 영역은 수가 체계 내에서 미세 조정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안전망’과 ‘형평성’의 분리, 지속 가능한 의료 생태계 조성
연구진은 한국형 지역 의료 보상체계의 핵심 방향으로 ‘목적 기반의 이원화 설계’를 제안했다.
첫째, ‘최소한의 필수의료 기능 유지(안전망 확보)’가 필요한 지역에는 손실 보전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건강보험 수가보다는 국고나 지자체 예산, 혹은 별도의 기금을 통해 기관 단위로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인력 인건비를 직접 보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수요가 없어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 수가 인상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일정 수준의 의료서비스 공급(형평성 확보)’이 목적인 지역에는 기능과 성과 중심의 수가 가산이 효과적이다. 단순히 행정구역상 지방에 있다고 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병원이 지역 내에서 응급, 분만, 소아 진료 등 필수의료의 거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환자 의뢰 및 회송 네트워크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보상해야 한다.
또한 보상의 기준이 되는 ‘지역’의 개념도 고도화해야 한다. 현재의 시·군·구 행정구역 단위는 실제 의료 생활권과 괴리가 있다. 따라서 의료 접근성, 인구학적 특성, 자체 충족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진료권’ 중심, 혹은 기능 중심의 지도화(Mapping)를 통해 지원 대상을 정교하게 선정해야 한다.
지역 의료 붕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단순히 돈을 더 주는 방식으로는 밑 빠진 독을 채울 수 없다. ‘어디에’, ‘왜’,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건강보험 재정과 국가·지자체 재정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시급하다. 흩어진 정책을 ‘안전망’과 ‘형평성’이라는 두 축으로 재정렬하는 것, 그것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의료를 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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