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컷 카멜레온들이 영역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흥분과 분노를 나타내는 강렬하고 선명한 색상 변화가 발현되었다. ※AI 제작 이미지
카멜레온의 색 변화, 온도 조절과 소통을 위한 최첨단 나노 기술
오랜 기간 카멜레온의 극적인 색 변화 능력은 생존을 위한 완벽한 ‘위장술’로 알려져 왔다. 대중매체와 교육 자료에서도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완벽히 녹아들어 포식자를 피하거나 사냥감을 속이는 은신 전문가로 묘사됐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의 과학적 연구 결과는 이러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실제로 카멜레온의 역동적인 색 변화는 위장보다는 종 내부의 복잡한 사회적 소통과 생리적 기능, 특히 체온 조절에 훨씬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카멜레온이 색을 바꾸는 것은 피부 속 색소 세포(Chromatophores)를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라, 나노 크기의 광결정(Photonic crystals) 구조를 조절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일종의 ‘구조색(Structural Coloration)’으로, 빛의 반사율을 조절해 극적인 색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기분 상태(공격성, 흥분, 구애 등)와 외부 온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일어난다.
파충류학자들은 카멜레온의 색 변화가 순간적인 감정이나 필요에 따라 자율신경계를 통해 정교하게 제어되는 현상이며, 이는 위장이라는 단일 목적을 넘어선 다차원적인 생존 전략임을 확인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빠르고 현란하게 변하는 색상은 대부분 짝짓기나 영역 싸움과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 상황에서 나타났다.

상식을 뒤엎은 색 변화의 작동 원리: 나노 결정 조절
카멜레온이 색을 바꾸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표피 아래에 위치한 ‘이리도포어(Iridophore)’라는 특수한 색소 세포에 있다. 과거에는 색소 과립을 이동시켜 색을 바꾼다고 알려졌으나,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 연구진이 2015년에 발표한 연구(출처: Nature Communications)를 통해 이리도포어 세포 내에 구아닌(Guanine)으로 이루어진 나노 결정체가 존재하며, 이 간격을 조절하여 색을 바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나노 결정체는 빛의 특정 파장을 반사하거나 투과시키는데, 세포가 이완되거나 수축할 때 이 결정 격자의 간격이 달라지면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결정 간격이 좁아지면 청색 계열의 짧은 파장을 반사하고, 간격이 넓어지면 노란색이나 빨간색 계열의 긴 파장을 반사하는 원리다. 이는 색소(Pigment)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Structure)를 이용해 색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기능: 짝짓기 신호와 영역 다툼
카멜레온의 색 변화 중 가장 역동적이고 눈에 띄는 변화는 사회적 상호작용 중에 발생한다. 이는 위장보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 도구’로서의 역할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컷 카멜레온이 다른 수컷과 영역 다툼을 할 때, 그들은 순식간에 가장 밝고 대조적인 색상(보통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등)으로 변한다. 이는 자신이 강력한 경쟁자임을 과시하고, 상대방에게 물러서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는 행위다. 위협적인 색상 변화는 실제로 물리적인 싸움 없이도 상대방을 압도하고 패배를 시인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반대로, 암컷에게 구애할 때는 수컷은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밝고 화려한 패턴을 선보이며, 암컷 역시 수컷의 접근에 대한 수용 여부에 따라 색상을 변화시켜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알린다. 암컷이 교미에 관심이 있다면 밝고 화려한 색을 유지하지만, 이미 임신했거나 거부할 경우 어둡고 무늬가 없는 색상으로 변해 수컷의 시도를 차단한다. 이러한 역동적인 디스플레이는 카멜레온 종의 생존 및 번식 성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생존의 열쇠: 온도 변화에 대응하는 자동 조절 시스템
카멜레온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는 변온동물(Ectotherm)이므로, 외부 환경 온도에 매우 민감하다. 색 변화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리적 기능으로도 작동한다. 체온 조절(Thermoregulation)을 위한 색 변화는 환경의 색과 일치시키기 위한 위장보다 훨씬 빠르고 명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카멜레온이 아침 일찍 차가운 환경에 있을 때, 그들은 태양 복사열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피부색을 어두운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바꾼다. 어두운 색상은 빛을 더 많이 흡수하여 체온을 빠르게 높이는 데 유리하다. 반대로, 한낮에 태양이 뜨거워져 체온이 과도하게 올라갈 위험이 있을 때, 카멜레온은 피부색을 밝은 녹색이나 회백색으로 변화시켜 태양열을 반사하고 과열을 방지한다. 이처럼 색 변화는 단순히 환경에 숨는 행위를 넘어, 생존에 직결된 신진대사율을 제어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활용된다.
위장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카멜레온이 위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그것은 아니다. 카멜레온은 기본적인 보호색을 가지고 있으며, 느리고 점진적인 색 변화를 통해 주변 환경과 어느 정도 색을 맞추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카멜레온의 색 변화는 주로 ‘동종 간의 소통’이나 ‘환경적 요인 대응’과 같은 능동적인 기능에 집중되어 있으며, 위장(Cryptic coloration)은 이러한 능동적 변화가 없는 ‘휴식 상태’에서 기본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수동적 역할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수동적인 보호색은 카멜레온이 편안한 상태일 때 유지되는 색상으로, 주변 배경에 대략적으로 일치할 뿐, 위협을 느꼈을 때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배경색으로 변화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협을 느끼거나 흥분하면 더욱 눈에 띄는 대비색으로 변해 포식자에게 경고하거나 혼란을 주는 방어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출처: PNAS, 행동 생태학 연구). 결론적으로, 카멜레온의 화려하고 급격한 색 변화는 위장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의 활발한 사회적, 생리적 생활을 위한 고도의 생체 신호 전달 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