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이 사라졌다. 후각 상실, 운동 증상 수년 전부터 보내는 ‘뇌의 경고’ 파킨슨.
아침에 눈을 떠 습관처럼 커피를 내린다. 진한 원두 향이 코끝을 찔러야 하지만, 오늘은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다. 며칠째 이어진 현상에 단순한 감기 후유증이라 치부하지만, 이처럼 일상적인 감각의 상실이 사실은 수년 뒤 찾아올 심각한 신경 퇴행성 질환의 침묵하는 전조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바로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은 떨림, 경직, 느린 움직임 등 운동 능력 저하 증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환자들은 이러한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후각 저하증(Hyposmia)’을 겪는 경우가 매우 많으며, 이는 질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 시점을 결정하는 핵심 단서로 주목받고 있다.

파킨슨병 전조: 후각 상실, 운동 증상 수년 전부터 보내는 ‘뇌의 경고’
파킨슨병은 뇌의 도파민 분비 세포가 점진적으로 파괴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의 특징적인 운동 증상(떨림, 경직, 서동증)이 나타나면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간주된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 연구들은 파킨슨병이 운동 증상 발현 시점보다 훨씬 이전부터 뇌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 비운동성 전조 증상 중 가장 흔하고 예측력이 높은 것이 바로 후각 상실이다. 전문의들은 파킨슨병 환자의 70~90%가 발병 초기에 후각 저하를 경험하며, 이는 운동 증상 발현 시점보다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전에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후각 상실이 파킨슨병 전조로 작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질병을 유발하는 병리적 변화가 뇌의 후각 영역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파킨슨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알파-시누클레인(alpha-synuclein)’ 단백질의 비정상적인 응집체(루이 소체)가 뇌간과 후각 망울(Olfactory Bulb)에 가장 먼저 축적된다는 사실이 부검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이 단백질 응집체가 후각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면서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이 점차 저하되는 것이다. 즉, 후각 상실은 뇌 속에서 파킨슨병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초기이자 확실한 생물학적 신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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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노화와 구별되는 파킨슨병 관련 후각 저하의 특징
나이가 들면 후각 기능이 자연스럽게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파킨슨병과 관련된 후각 저하는 일반적인 노화 현상이나 감기로 인한 일시적 후각 상실과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인다. 첫째, 파킨슨병 환자의 후각 저하는 대개 영구적이고 점진적이다. 둘째, 특정 냄새를 구별하는 능력(냄새 식별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예를 들어, 커피, 바나나, 계피 등 일상적인 냄새를 맡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신경과 전문의들은 후각 검사를 파킨슨병 고위험군을 선별하는 비침습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가족력이 있거나 렘수면 행동 장애(RBD)와 같은 다른 비운동성 전조 증상을 함께 겪는 사람들에게 후각 저하가 발견될 경우, 파킨슨병 발병 위험도가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렘수면 행동 장애 역시 알파-시누클레인이 뇌간에 침범하여 발생하는 전조 증상으로, 후각 상실과 함께 나타날 경우 파킨슨병 발병률이 50% 이상으로 치솟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기주 선한빛요양병원 병원장(신경과 전문의)는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 응집체는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 뇌간과 후각 망울에서부터 침묵하며 축적되기 시작한다.”며 “후각 상실은 이 병리적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초기 단계의 생물학적 마커라는 점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기 진단이 중요한 이유: 신경 보호 치료의 창을 열다
현재 파킨슨병의 표준 치료는 도파민 보충을 통해 운동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병의 진행 자체를 멈추거나 되돌리는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다.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막는 ‘신경 보호 치료제’ 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이러한 치료제는 도파민 세포가 완전히 파괴되기 전, 즉 병의 초기 단계에서 투여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전의 ‘전조 단계’를 포착하는 것이 미래 치료 전략의 핵심이 됐다. 후각 상실을 포함한 전조 증상을 통해 고위험군을 미리 식별하고, 이들에게 임상시험 단계의 신경 보호 치료제를 선제적으로 투여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만약 후각 상실을 통해 파킨슨병의 싹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환자들은 운동 장애가 발생하기 전에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환자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후각 상실 자가 점검 및 대처 방안: 일상 속 작은 변화에 주목해야
파킨슨병 전조로서의 후각 상실은 종종 환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냄새를 맡지 못해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고 느끼거나,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50대 이상이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일상 속에서 후각 변화를 주기적으로 자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가 점검 방법으로는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나 향수의 냄새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지, 가스 누출이나 음식물이 상한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있다. 만약 후각 기능 저하가 뚜렷하게 느껴진다면, 이비인후과 진료를 통해 코의 구조적 문제(비염, 축농증 등)를 먼저 배제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가 없는데도 후각 저하가 지속된다면,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파킨슨병 전조 증상에 대한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현재는 ‘펜실베이니아 냄새 식별 검사(UPSIT)’와 같은 표준화된 후각 기능 검사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후각 저하의 정도와 유형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후각 상실은 단순한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다.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 시점을 수년 앞당길 수 있는 이 ‘뇌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 미래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 될 것이다.
이러한 비운동성 전조 증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질수록, 파킨슨병을 초기 단계에 발견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도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기주 선한빛요양병원 병원장(신경과 전문의)는 “파킨슨병 치료는 증상 완화에 집중되어 있지만, 미래에는 병의 진행을 늦추는 신경 보호 치료가 핵심”이라며, ’50대 이상이면서 렘수면 행동 장애(RBD) 등 다른 고위험군 전조 증상과 후각 저하가 함께 발견된다면, 조기 진단을 위한 정밀 검사를 통해 신경 보호 치료의 창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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