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사용 금지는 확장 유추 해석, 전문의 아니면 ‘페이스’ 안 된다? 법원, “페이스 사용은 확장 유추 해석”이라며 보건소 처분 취소
‘페이스(FACE)’라는, 얼굴을 뜻하는 영단어를 의원 이름에 사용하려면 반드시 성형외과나 피부과 전문의 자격이 있어야 할까? 의료 소비자의 오인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 같은 명칭 사용을 불허한 보건소의 행정 처분에 대해 사법부가 “문언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해석”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 중인 K원장이 관할 보건소를 상대로 제기한 ‘의료기관 개설 신고사항 변경신고 불수리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해당 판결은 지난 9월 내려졌으며, 피고인 보건소 측이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지난 10월 17일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의료기관 명칭 사용에 대한 보건 당국의 경직된 유권해석 관행에 변화가 예상되며, 일반의의 진료 범위와 명칭 사용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페이스’ 명칭 둘러싼 1년의 줄다리기
사건의 발단은 20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원장은 ‘페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특정 병원경영지원회사(MSO)와 계약을 맺고, 해당 명칭을 포함한 상호로 의원을 개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브랜드 통일성을 위해 ‘페이스’라는 단어를 의원 고유명칭에 포함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에 K원장은 관할 보건소에 의료기관 개설신고사항 변경 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보건소 담당자는 “고유명칭에 ‘페이스’가 포함될 경우, 특정 진료과목이나 질환명과 유사하여 의료법 시행규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K원장의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원 일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K원장은, 우선 ‘페이스’를 제외한 다른 이름으로 의원을 개설해 운영을 시작해야 했다. 이후 K원장은 법적 검토를 거쳐 올해 2월, 다시 한번 ‘페이스’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의료기관 개설신고사항 변경 신고를 했으나, 보건소는 앞서와 동일한 이유로 또다시 거부 처분(불수리 처분)을 내렸다. 결국 K원장은 이 부당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보건소의 ‘소비자 오인’ 논리, 근거는?
보건소가 처분의 근거로 내세운 법 조항은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 제1호’이다. 해당 조항은 의료기관의 명칭 표시에 관한 규정으로, 의료기관의 종류 명칭(예: 의원, 병원) 앞에 고유명칭을 붙일 수 있도록 하되, 이 고유명칭이 “의료기관의 종류 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특정 진료과목이나 질환명과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보건소 측은 이 조항에 더해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따랐다고 주장했다. 즉, ‘페이스(FACE)’라는 명칭은 그 단어가 주는 직접적인 연상 작용으로 인해, 의료소비자가 해당 의원을 성형외과나 피부과 전문의가 개설한 의료기관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K원장은 해당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의 신분이므로, ‘페이스’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하는 ‘유사 명칭’ 사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보건소 측의 핵심 논리였다. 이는 의료광고 및 명칭 사용에 있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잘못된 의료 정보로 인한 피해를 막겠다는 행정 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해석됐다.
법무법인 지금 김진환 변호사는 “법원의 이번 판결은 의료기관 명칭에 대한 규제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본래 취지를 넘어서, 행정 편의주의적 해석이나 과도한 시장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페이스’라는 일반 명사가 특정 전문과목을 독점적으로 상징한다고 본 보건소의 해석은 다소 경직된 시각이었음을 사법부가 확인시켜 준 셈”이라고 밝혔다.

법원 “얼굴 진료, 전문의 독점 영역 아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보건소의 주장과 달랐다. 재판부는 보건소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K원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우선 “‘페이스’라는 단어가 포함된 명칭에서 얼굴의 피부미용 등이 쉽게 연상될 수 있고, K원장이 가입한 병원경영지원 프랜차이즈 회사(MSO) 역시 그러한 의도에서 작명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렇다고 해서 이를 법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대법원 판례를 인용, 해당 법 조항의 해석에 있어 지나친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법원이 주목한 핵심은 ‘일반의의 진료 범위’였다. 재판부는 “현행 의료법상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라 하더라도 그 진료 범위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전제했다. 이는 곧 “일반의 역시 얼굴 부위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얼굴의 피부미용 개선을 위한 진료행위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재판부는 “얼굴 부위가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특정 진료과목 전문의의 독점적 진료영역이라고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페이스’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진료 행위를 K원장이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이상, 그 명칭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를 기만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확장 유추 해석’의 함정… 실재하는 타 지역 사례들
재판부는 보건소가 근거로 든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 제1호’의 해석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의 문언적 의미를 넘어, ‘페이스’라는 단어가 전문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의견을 도출하는 것은, 법률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는 확장 유추 해석”이라며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내용까지 행정 당국이 자의적으로 확대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소비자 오인 가능성’이라는 보건소의 핵심 우려에 대해서도 “K원장이 개설한 의원에서 ‘페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의료소비자가 K원장을 성형외과나 피부과 전문의라고 오인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현실적 사례를 결정적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미 경기도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는 ‘페이스’라는 단어를 합성한 명칭을 사용하는 의료기관이 다수 개설되어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K원장이 개설하려던 관할 보건소의 불수리 처분이 형평성에도 어긋나며, ‘페이스’라는 명칭이 소비자 오인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강력한 방증이 되었다.
항소 포기로 확정된 판결, 행정 관행 바뀔까
결국 1심 재판부가 K원장의 청구를 인용, 보건소의 불수리 처분을 ‘위법하다’며 취소 판결을 내리자, 보건소 측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로써 K원장은 1년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자신이 원했던 의원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판결은 의료기관의 명칭 사용에 있어 ‘소비자 오인’의 범위를 행정 당국이 어디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법부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익명의 의료경영 컨설팅 전문가는 “최근 병원 경영지원회사(MSO)를 통한 프랜차이즈형 의원이 늘어나면서 네이밍과 브랜드 통일성이 중요해졌다”며 “법원이 ‘페이스’와 같은 일반적 용어 사용의 길을 열어준 것은 긍정적이나, 의료계 스스로도 소비자가 전문성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정보 제공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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