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절반 감염 헬리코박터균, 막연한 공포 넘어선 과학적 접근 필요
당신은 속이 더부룩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 단순히 ‘체했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하는가? 한국인의 일상적인 위장 장애 뒤에는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Helicobacter pylori)’이라는 조용한 불청객이 숨어 있다.
이 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 물질이자, 한국에서 가장 흔한 암 중 하나인 위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높은 감염률과 치명적인 연관성 때문에, 헬리코박터균 감염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당장 제균 치료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위암의 주범’ 헬리코박터균, 왜 한국인에게 치명적인가?
헬리코박터균은 위 점막에 기생하며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세균이다. 한국인의 감염률이 높은 이유는 공동 식사 문화와 위생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 균이 위험한 핵심 이유는 단순히 위염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위암 발생의 전 단계인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위암 발병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위암 발생 위험을 2배에서 3배 이상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균에 감염되면 위 점막은 지속적인 염증 반응을 겪게 되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 점막 세포가 위축되고 결국 소장이나 대장의 세포처럼 변하는 장상피화생으로 진행된다. 장상피화생은 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병변으로, 일단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따라서 헬리코박터균은 위암이라는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자 가장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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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균 치료, ‘선택’인가 ‘필수’인가? 전문가 권고 기준은
모든 헬리코박터균 감염자가 반드시 제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균 치료는 항생제를 복용하는 과정이기에 부작용이 따를 수 있고, 최근에는 항생제 내성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의학계는 제균 치료 대상을 명확히 구분하여 권고하고 있다.
대한소화기학회는 다음과 같은 경우 제균 치료를 ‘필수’로 권고한다. 첫째, 소화성 궤양(위궤양, 십이지장 궤양)이 있거나 과거에 앓았던 경우. 둘째, 위암으로 인해 내시경 절제술을 받은 환자. 셋째, 위 MALT 림프종 환자. 넷째, 조기 위암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이다. 만성 위염만 있는 무증상 감염자의 경우, 환자의 연령, 위 점막 상태(위축성 위염 또는 장상피화생 유무), 위암 가족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특히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진행됐다면, 위암 예방 효과를 위해 제균 치료를 강력히 권고하는 추세다.
이광원 서울 민병원 내과 진료원장(소화기 내과 전문의)은 “헬리코박터균은 위암 발생의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이지만, 모든 감염자가 즉시 치료할 필요는 없다. 위암의 고위험군이라면 반드시 제균 치료를 통해 위암 예방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제균 치료의 성공률과 재발 방지 전략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는 보통 두 가지 항생제와 한 가지 위산 억제제를 7일에서 14일간 복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차 치료의 성공률은 약 80~90% 수준이었으나, 최근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이 증가하면서 성공률이 다소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1차 치료에 실패할 경우,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조합한 2차 치료를 시도하게 된다. 2차 치료까지 성공하면 최종 제균율은 95% 이상으로 높아진다.
제균 치료 후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다. 한국인의 경우 재감염률이 높지는 않지만, 가족 간의 감염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찌개나 국을 함께 떠먹는 식습관을 개선하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균 치료에 성공했다고 해서 위암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진행됐다면, 제균 후에도 위암 발생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균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정기적인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위 점막 상태를 꾸준히 감시해야 한다.
홍성수 비에비스나무병원 병원장(소화기내과 전문의)은 “최근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1차 제균 치료 성공률이 다소 낮아지는 추세다. 따라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개인의 내성 위험도를 평가하고, 치료 후에도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를 통해 위 점막 상태를 꾸준히 확인하는 것이 재발과 위암 진행을 막는 핵심이다.”라고 덧붙였다.
헬리코박터균은 한국인의 위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현실적인 위험 요소다. 하지만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위암 가족력이나 위 점막 병변 유무 등 개인의 위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면 적극적인 제균 치료를 통해 위암 예방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며, 제균에 성공했더라도 안심하지 않고 생활 습관 개선과 지속적인 추적 관찰을 병행해야 건강한 위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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