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선원의 비극: 해상 재앙 괴혈병, 무지(無知)가 낳은 해상 재앙의 역사적 통찰
16세기 대항해시대부터 18세기까지, 대양을 누비던 수많은 선원들에게 바다는 기회의 땅이 아닌 죽음의 무대였다. 항해 중 선원들을 덮친 가장 잔혹하고 흔한 적은 폭풍우나 해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괴혈병(Scurvy)’이었다. 이 병은 선원들의 잇몸을 곪게 하고, 피부에 검붉은 반점을 만들며, 극심한 피로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했다. 괴혈병으로 사망한 선원의 수는 전쟁이나 다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으며, 역사학자들은 수백만 명의 선원이 이 단순한 영양 결핍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렌지와 레몬이라는 단순한 과일이 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인류는 수백 년간 처절한 대가를 치렀다. 이 비극적인 역사는 단순한 과학적 발견을 넘어,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통찰을 제공한다.

바다의 저주: 항해를 멈춘 침묵의 살인자
괴혈병은 선원들에게 ‘바다의 저주’로 불렸다. 긴 항해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면 선원들은 이유 모를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으로 나타났지만, 곧 증상은 끔찍하게 변했다. 잇몸은 부어오르고 피가 났으며, 치아는 빠져나갔다. 이전에 다쳤던 상처가 다시 터지거나, 피부 아래에 출혈이 발생하여 검붉은 반점이 생겼다. 이 병은 콜라겐 생성에 필수적인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결핍으로 발생한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할 수 없는 장기간의 항해 환경은 괴혈병 발생의 완벽한 조건이었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1497~1499년) 당시, 160명의 선원 중 100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으며, 영국의 해군력은 이 병 때문에 심각하게 약화됐다. 1740년부터 1744년까지 조지 앤슨 제독의 세계 일주 항해에서는 1,900명의 선원 중 1,400명 이상이 괴혈병으로 사망하는 등 그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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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년의 오해와 제임스 린드의 실험: 단순한 진실을 향한 여정
수세기 동안 의학계는 괴혈병의 원인을 ‘나쁜 공기’, ‘소금에 절인 고기’, 심지어 ‘게으름’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수많은 엉뚱한 치료법이 시도됐지만, 효과는 없었다. 이 암흑기를 깨고 단순한 진실에 도달한 인물은 스코틀랜드 해군 외과의사 제임스 린드(James Lind)였다. 1747년, 린드는 HMS 솔즈베리호에서 역사적인 임상 실험을 수행했다. 그는 괴혈병 환자 12명을 두 명씩 여섯 그룹으로 나누고, 평소 식단 외에 각기 다른 보충제를 제공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사이다를, 두 번째 그룹에게는 비트리올 엘릭서(황산 희석액)를, 세 번째 그룹에게는 식초를, 네 번째 그룹에게는 바닷물을, 다섯 번째 그룹에게는 오렌지 두 개와 레몬 하나를, 그리고 여섯 번째 그룹에게는 향신료와 보리 물을 줬다. 불과 6일 만에 오렌지와 레몬을 섭취한 두 선원은 눈에 띄게 회복됐으며, 그중 한 명은 임무에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린드는 이 실험을 통해 괴혈병이 특정 식단을 통해 치료될 수 있음을 명확히 입증했다.

오렌지와 레몬, 수백만 목숨을 구한 ‘황금의 열매’
린드의 실험 결과는 명확했지만, 당시 해군 당국은 그의 발견을 즉시 채택하지 않았다. 당시의 보수적인 의학계는 린드의 연구를 무시하거나, 레몬과 오렌지의 보급 비용 문제를 들어 도입을 꺼렸다. 린드가 결과를 발표한 지 거의 50년이 지난 1795년이 돼서야 영국 해군은 마침내 모든 선원에게 레몬 주스(나중에 라임 주스로 대체됐다)를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즉각적인 효과를 냈다. 괴혈병으로 인한 해군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영국은 이로 인해 장거리 항해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해상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단순한 과일이 군사적, 경제적 판도를 바꾼 것이다. 이 시기에 영국 선원들이 라임 주스를 마시는 습관 때문에 ‘라이미(Limey)’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비타민 C 결핍의 잔혹한 대가: 현대 의학이 주는 교훈
괴혈병의 역사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의 비극을 상징한다. 수백만 명의 선원이 사망한 것은 그들이 비타민 C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며, 치료법이 발견된 후에도 관료주의와 편견 때문에 그 해결책이 널리 적용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20세기 초, 카시미르 풍크(Casimir Funk)가 비타민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1930년대에 비타민 C가 분리 및 합성되면서 괴혈병은 완전히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전락했다.
현대 사회에서 괴혈병은 극히 드물지만, 이는 우리가 영양학적 지식과 공중 보건 시스템을 통해 얻은 귀중한 교훈 덕분이다. 괴혈병의 역사는 우리에게 단순한 진실이 때로는 가장 찾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과학적 발견이 사회적 수용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수백만 선원의 희생은 결국 인류가 영양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잔혹한 대가가 됐다. 이처럼 역사는 과거의 무지를 통해 현재의 지혜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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