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 실데나필, 혈압약에서 비아그라로, 임상시험의 ‘실패’가 낳은 50억 달러의 성공
1990년대 초 영국 웨일스의 머시티드(Merthyr Tydfil) 지역. 화이자(Pfizer) 연구팀은 협심증과 고혈압 치료를 위한 신약 ‘실데나필 시트레이트(Sildenafil Citrate)’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심혈관계 확장을 통해 혈압을 낮추는 이 약물은 기대와 달리 심장 질환 치료에는 미미한 효과만을 보이며 사실상 실패작으로 판정되는 듯했다.
연구원들은 시험을 종료하고 남은 약물을 회수하려 했으나, 몇몇 남성 환자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들은 약을 반납하기를 꺼렸으며, 그 이유를 묻자 수줍게 ‘특이한 부작용’을 고백했다. 바로 발기 기능의 현저한 개선이었다. 이 우연한 발견은 단순한 임상 실패를 넘어, 50억 달러 규모의 거대 시장을 창출하고 성(性)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영원히 바꿔놓는 드라마틱한 재탄생의 서막이 됐다.

협심증 치료제에서 시작된 기적의 여정
실데나필은 본래 심장 질환의 치료를 목표로 개발됐다. 이 물질은 ‘포스포디에스테라제 5형(PDE5)’ 효소를 억제하는 작용기전을 갖고 있다. PDE5는 혈관 평활근의 이완을 유도하는 cGMP라는 물질을 분해하는데, 실데나필이 이 PDE5를 막으면서 cGMP 수치가 높아지게 된다. 그 결과, 혈관이 확장되어 혈류가 개선되고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심장 근육에 미치는 영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혈압 강하 효과 역시 강력하지 않았다. 임상시험은 좌초 위기에 놓였으나, 환자들이 호소한 ‘특이 부위의 혈류 증가’라는 부작용이 연구진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이 부작용은 곧 실데나필이 PDE5를 억제함으로써 음경 해면체로 가는 혈류를 극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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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의 극적인 재탄생
화이자는 이 예상치 못한 결과에 주목하고 즉시 약물의 개발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발기부전(ED)은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심리적인 문제로 치부됐으며, 효과적인 경구 치료제는 전무했다. 주로 사용되던 치료법은 침습적인 주사 요법이나 보형물 삽입술이었기에 환자들에게 큰 부담을 줬다. 실데나필은 이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임상시험이 신속하게 진행됐고, 1998년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실데나필을 발기부전 치료제로 승인했다.
푸른색 다이아몬드 모양의 알약은 ‘비아그라(Viagra)’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됐다. 비아그라는 출시 첫 해에만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제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신약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단순한 약물 출시를 넘어, 성 기능 장애를 치료 가능한 의학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든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조정호 강남골드만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은 “비아그라의 등장은 발기부전을 노화나 심리적 문제로 치부하던 과거의 인식을 바꾸고, 이를 혈관 건강의 지표로 인식하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며, “실제로 발기부전 환자의 약 70%는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 등 기저 질환을 동반하므로, ED 치료는 단순히 성 기능 개선을 넘어 전신 건강을 진단하고 관리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강조했다.

의학적 세렌디피티: 예상치 못한 성공의 방정식
비아그라의 탄생 스토리는 제약 연구 개발(R&D) 과정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팀은 혈압을 낮추는 주된 목표에서는 실패했지만, 약물이 작용하는 기전 자체(PDE5 억제)가 다른 신체 부위에 가져올 수 있는 효과를 간파하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특히 환자들이 보인 ‘약물 반납 거부’라는 비공식적인 피드백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연구 방향으로 발전시킨 점은 높이 평가된다.
비아그라 외에도 미녹시딜(Minoxidil)이 고혈압 치료제에서 탈모 치료제로, 부프로피온(Bupropion)이 항우울제에서 금연 보조제로 재탄생한 것 역시 이와 유사한 의학적 세렌디피티의 사례로 꼽힌다.
비아그라가 바꾼 성(性)과 건강의 담론
비아그라의 등장은 발기부전 치료라는 의학적 영역을 넘어, 사회 문화적 영역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이 약물은 성적 건강을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끌어올렸으며, 노년층의 성생활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발기부전이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 등 다른 기저 질환의 초기 징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남성 건강 전반에 대한 관심과 조기 진단의 중요성이 커졌다. 비아그라는 이후 시알리스, 레비트라 등 경쟁 약물의 개발을 촉진하며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실데나필이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로도 사용되며, 원래의 혈관 확장 기능을 다른 질환에 적용하는 ‘약물 재창출’의 모범 사례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좌절 직전이었던 한 물질이 환자들의 사소한 고백을 통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혁신적인 약물로 완벽하게 재탄생한 비아그라의 스토리는, 과학 연구의 역설적이고도 위대한 성공 사례다.
조정호 강남골드만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은 “실데나필의 성공 스토리는 의약품 연구 개발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관찰과 통찰력, 즉 ‘세렌디피티’가 얼마나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라며, “이처럼 환자들이 약물 반납을 거부했던 사소한 피드백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연구 방향으로 발전시킨 화이자의 결정은 현재의 혁신적인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전략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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