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색 깃털을 가진 어린 홍학이 얕은 물가에 서 있다.※AI 제작 이미지
홍학이 원래 흰색이었다. 왜 플라밍고는 분홍색이 됐을까?
많은 사람이 홍학, 즉 플라밍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선명한 분홍색 깃털을 생각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화려한 새는 태어날 때부터 분홍색이 아니었다. 새끼 홍학은 흰색 또는 회색빛을 띠며, 우리가 아는 그 아름다운 색깔은 특정 먹이를 섭취함으로써 후천적으로 형성된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 6종의 플라밍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실이며, 종에 따라 색상의 농도와 띠는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는 마치 사람의 피부색이 자외선 노출에 따라 변하듯, 홍학의 색깔 역시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전 세계 수많은 동물 중에서 이처럼 먹이에 따라 몸의 색깔이 극적으로 변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조류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색소를 체내에서 직접 합성하거나 구조색(structural color)을 통해 색을 발현한다. 하지만 플라밍고의 분홍색은 단순한 색깔 변화를 넘어,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먹이가 이 신비로운 색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색깔 뒤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와 생태학적 중요성은 무엇일까?

새끼 플라밍고의 놀라운 색깔 변화 과정
플라밍고는 부화할 때 연한 회색 또는 흰색의 솜털을 지닌 채 세상에 나온다. 어미 새와는 전혀 다른 수수한 모습이다. 이 새끼 플라밍고들은 처음 몇 주간 어미의 특수한 분비물인 ‘크롭 밀크(Crop Milk)’ 또는 ‘플라밍고 밀크’를 먹으며 성장한다. 이 분비물은 어미 플라밍고의 소화관 내 특수 샘에서 생성되며, 고지방, 고단백은 물론 필수 영양소와 함께 소량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함유한다. 암수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이 붉은빛 유액은 새끼의 빠른 성장을 돕는 동시에, 훗날 깃털 색깔 변화의 미미한 기초를 놓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크롭 밀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어미의 몸속에 저장된 카로티노이드까지 고갈돼 어미 깃털 색이 일시적으로 옅어지거나 흰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새끼 플라밍고는 크롭 밀크에서 점차 스스로 먹이를 찾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성조가 되기까지 짧게는 1~2년,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며, 이 기간 동안 꾸준히 특정 먹이를 섭취하며 솜털이 빠지고 성조 깃털이 자라면서 점진적으로 분홍색이나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플라밍고의 식단이 곧 그들의 외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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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로티노이드 색소, 분홍빛의 핵심 비결
플라밍고의 깃털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주범은 바로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는 지용성 색소 화합물이다. 이 색소는 홍조류(붉은 해조류)인 두날리엘라 살리나(Dunaliella salina)와 같은 미세 조류, 특정 박테리아인 시아노박테리아(청록색 조류), 그리고 이들을 섭취하는 브라인 쉬림프(Brine shrimp), 작은 게, 새우, 곤충 유충 등 갑각류와 무척추동물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플라밍고는 주로 염호나 알칼리성 호수에 서식하며, 특유의 거대한 부리를 이용해 물속의 미세한 먹이(플랑크톤, 조류, 작은 무척추동물)를 여과해서 먹는다. 이 먹이 사슬을 통해 체내에 카로티노이드가 축적되는 것이다.
체내로 흡수된 카로티노이드는 플라밍고의 간에서 특수한 대사 과정을 거쳐 ‘아스타잔틴(Astaxanthin)’이나 ‘칸타잔틴(Canthaxanthin)’ 같은 특정 색소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간의 효소들이 복잡한 산화 및 변형 반응을 일으킨다. 전환된 색소들은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운반된 후 깃털의 케라틴 단백질, 피부, 심지어 부리와 다리에 침착되면서 특유의 분홍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깃털을 염색하는 것이 아니라, 깃털의 구성 성분으로 포함되는 셈이다. 카로티노이드의 섭취량과 체내 대사 효율이 높을수록 깃털은 더욱 선명하고 짙은 붉은색을 띠게 됐다.

서식 환경이 결정하는 플라밍고의 다채로운 색상
플라밍고의 깃털 색깔은 종에 따라, 그리고 서식지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이는 각 지역의 먹이원 종류와 카로티노이드 함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리브해 연안에 서식하는 아메리카 플라밍고(American Flamingo, 또는 카리브 플라밍고)는 브라인 쉬림프나 고농도의 카로티노이드를 함유한 다른 갑각류를 주로 섭취하기 때문에 가장 선명하고 짙은 붉은색 또는 주황색을 띠는 경향이 있다. 반면,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 분포하는 큰홍학(Greater Flamingo)은 플랑크톤과 조류 등 상대적으로 카로티노이드 함량이 낮은 먹이를 섭취하므로 옅은 분홍색에서 거의 흰색에 가까운 색깔을 유지하기도 한다. 꼬마 플라밍고(Lesser Flamingo)는 스피룰리나(Spirulina)와 같은 시아노박테리아를 주식으로 삼는데, 이 미생물은 베타카로틴을 포함한 풍부한 카로티노이드를 함유하고 있어 꼬마 플라밍고는 매우 진한 자홍색 또는 심홍색을 띠기도 한다.
이러한 색상 차이는 단순히 미적인 것을 넘어, 해당 개체의 건강 상태와 먹이 획득 능력을 반영하는 중요한 생체 지표가 되기도 한다. 밝고 선명한 색깔을 지닌 플라밍고는 보통 건강하고 먹이를 잘 섭취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생존력이 높다는 의미이며, 또한 서식지의 생태계가 건강하고 먹이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색이 바래거나 탁해진 플라밍고는 영양 부족, 질병, 또는 서식 환경의 악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카로티노이드 섭취와 플라밍고 건강의 상관관계
카로티노이드는 플라밍고의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강에도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이 색소는 강력한 항산화제로 작용하여 체내의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플라밍고가 염분이 높거나 알칼리성인 호수와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또한 카로티노이드는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시력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다.
특히 번식기에는 이 카로티노이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암컷 플라밍고는 깃털의 색소를 알이나 새끼에게 전달하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된 크롭 밀크를 통해서다. 이렇게 전달된 카로티노이드는 새끼의 초기 성장과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하고 선명한 색깔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며,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컷 플라밍고는 밝고 짙은 깃털 색으로 자신이 건강하고 유능한 배우자임을 과시하며, 암컷 또한 선명한 색을 통해 번식 준비가 됐음을 알린다. 이는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중요한 기준이 되며, 더 밝은 색을 가진 개체가 짝을 찾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플라밍고에게 카로티노이드는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것을 넘어,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핵심적인 영양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동물원에서는 플라밍고의 아름다운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먹이나 보충제를 급여하는 경우가 많다.
홍학의 색깔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한 예시이며,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먹이 사슬, 생화학적 과정, 그리고 생존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결과물이다. 이들의 분홍빛 깃털은 자연이 만든 가장 신비로운 예술 작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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