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응급처치 얼음은 독이다: 잘못된 상식이 부르는 2차 피해
주말 저녁, 요리를 하던 김 모 씨는 뜨거운 기름이 팔뚝에 튀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극심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얼음 주머니를 꺼내 화상 부위에 갖다 댔다. 김 씨는 얼음의 차가움이 통증을 즉각적으로 줄여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잠시 후 피부는 더욱 따끔거리고 붉게 부어올랐다.
병원을 찾은 김 씨는 의사로부터 “얼음을 직접 댄 것이 오히려 피부 손상을 악화시켰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이처럼 화상 발생 시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이자, 피부 조직 괴사를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오해가 바로 ‘얼음 직대(直對)’ 응급처치다. 통증을 줄이려는 선의의 행동이 왜 독이 될까?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올바른 화상 응급처치 골든룰은 무엇일까?

얼음이 독이 되는 이유: 혈관 수축과 괴사 위험
화상은 피부 조직이 열에 의해 손상되는 현상이다. 화상 직후에는 피부 속 열기가 계속 남아 있어 손상이 깊어지는 ‘진행성 손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응급처치의 핵심은 이 잔열을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얼음을 직접 화상 부위에 대는 것은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조직 손상을 가속화한다.
얼음의 극저온은 피부 표면의 혈관을 급격하게 수축시킨다. 혈관이 수축하면 혈액 순환이 방해받고, 손상된 조직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중단된다. 이미 열 손상을 입은 조직이 혈액 공급마저 받지 못하면 세포 괴사가 촉진된다. 특히, 2도 이상의 깊은 화상이나 면역력이 약한 아동, 노인의 경우 얼음 직대는 동상과 유사한 2차 손상을 일으켜 회복을 현저히 지연시키거나 피부 이식까지 필요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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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응급처치, 얼음은 독이다: 흐르는 찬물이 유일한 정답
화상 응급처치의 국제적인 표준이자 국내 응급의학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권고하는 방법은 ‘흐르는 찬물’을 이용한 냉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흐르는’과 ‘찬물’이다. 화상 부위를 10~20분 동안(최소 15분 권장) 약 8~25℃ 사이의 흐르는 물에 노출시켜야 한다. 흐르는 물은 피부 조직에 남아있는 잔열을 지속적으로 빼앗아 오면서도, 얼음처럼 국소 부위의 혈관을 과도하게 수축시키지 않는다. 물이 흘러가면서 열을 가져가기 때문에 냉각 효과가 균일하게 유지된다. 또한, 찬물은 통증 수용체를 둔화시켜 통증 완화에도 효과적이다. 만약 흐르는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깨끗한 수건이나 거즈에 찬물을 적셔 덮어주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으나, 얼음이나 아이스팩을 직접 피부에 접촉시키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전형진 서울 민병원 외과 진료원장은 “화상 직후 얼음을 직접 대면 피부 혈관을 급격히 수축시켜 이미 손상된 조직에 혈액 공급을 차단하고 결국 세포 괴사를 촉진한다”며, “따라서 8~25℃ 사이의 흐르는 찬물을 최소 15분 이상 사용하는 것이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골든룰”이라고 강조했다.

체온 유지와 감염 방지: 냉각 후 대처법
냉각 처치가 끝난 후에는 환자의 체온 유지에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넓은 부위에 화상을 입었거나 장시간 냉각 처치를 한 경우, 저체온증 위험이 높아진다. 화상 부위 외의 신체는 담요 등으로 덮어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 또한, 화상 부위는 깨끗한 거즈나 천으로 덮어 감염을 방지해야 한다. 이때, 물집(수포)이 생겼다면 절대 터뜨려서는 안 된다. 물집은 2차 감염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옷을 입은 채 화상을 입었다면, 옷이 피부에 달라붙지 않은 경우에만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달라붙었다면 억지로 떼지 말고 그 상태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민간요법으로 알려진 된장, 간장, 알코올, 치약 등을 바르는 행위는 감염 위험을 높이고 의사가 화상 깊이를 판단하는 것을 방해하므로 피해야 한다.
화상 깊이별 구분과 병원 방문 시점
화상은 깊이에 따라 1도, 2도, 3도로 구분된다. 1도 화상은 표피층만 손상된 경우로 붉어지고 통증이 있으며 대개 며칠 내로 회복된다. 2도 화상은 표피와 진피 일부가 손상된 것으로 물집이 생기고 통증이 심하다. 3도 화상은 피부 전층과 피하 조직까지 손상된 상태로, 신경 말단이 파괴되어 오히려 통증이 없을 수도 있으며 피부가 하얗거나 검게 변한다. 응급처치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물집이 광범위하게 발생한 2도 화상 이상, 특히 얼굴, 손, 발, 관절 부위에 화상을 입은 경우, 또는 3도 화상이 의심될 때는 즉시 전문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화상의 초기 대처는 단순한 통증 완화를 넘어, 영구적인 흉터와 기능 장애를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잘못된 상식에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화상 응급처치 시 얼음 대신 흐르는 찬물을 사용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첫걸음이 됐다.
전형진 서울 민병원 외과 진료원장은 “냉각 처치 후에도 된장, 치약 등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바르는 행위는 감염 위험을 높이고 의사의 진단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실수”라고 지적하며, “물집을 터뜨리지 않고 깨끗하게 덮은 채 즉시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이 영구적인 흉터를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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