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시장의 절대강자로서 ‘꿈의 시총’ 1조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둔 일라이 릴리, 애플을 잇는 새로운 황제의 탄생과 미래 전략
바야흐로 ‘바이오 황제’의 등극이 임박했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제약·바이오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 작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18년 애플이 기술 기업으로서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의 벽을 깼다면, 2025년 11월 현재 일라이 릴리는 제약 기업 최초로 이 거대한 이정표에 도달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이는 단순한 주가 상승을 넘어, 전 세계 산업의 지형도가 인공지능(AI)을 위시한 테크 산업에서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을 다루는 바이오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빅파마 6개사를 합친 것과 맞먹는 압도적 가치
미국 의학전문지 바이오스페이스와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의 시가총액은 11월 들어 이미 9,9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실로 경이적인 수치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GSK, 머크, 노보 노디스크, 사노피, 화이자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거대 제약사(Big Pharma) 6곳의 기업 가치를 모두 합친 것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폭발적인 기업 가치 상승의 동력은 단연 비만치료제 시장이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일라이 릴리가 보여주고 있는 장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시장의 기대치는 최고조에 달했으며, 이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AI 트레이딩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모색하며 다시금 비만치료제 섹터로 자금을 대거 이동시키고 있다.
미국인의 약장까지 장악한 중국, 바이오 안보의 ‘숨통’을 조이다
‘마운자로’와 ‘젭바운드’, 그리고 게임 체인저 ‘오포글리프론’
일라이 릴리의 성장을 견인하는 양 날개는 단연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다. 현재 미국 내 신규 환자 점유율의 70~75%를 이 두 제품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시장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벌린 셈이다.
하지만 릴리의 진정한 무기는 아직 등판하지 않았다. 바로 경구용(먹는) GLP-1 약물인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이다. 현재 주사제 중심인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복용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경구용 제제의 등장은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오포글리프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획득하게 되면, 일라이 릴리는 ‘세계 최초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 승인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업계에서는 젭바운드, 마운자로에 이어 오포글리프론까지 가세할 경우, 이들 3개 치료제의 전 세계 매출이 향후 최대 1,01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장 오포글리프론이 승인되는 첫해에만 약 5억 달러의 매출이 예상되며, 2026년에는 이들 ‘트로이카’ 체제가 약 257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관측된다.

가격 인하 압박을 ‘박리다매’ 전략으로 정면 돌파
지난 11월 6일, 미국 백악관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와 노보 노디스크 위고비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통상적으로 정부 주도의 약가 인하는 제약사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는 악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시장의 해석은 달랐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로 전환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트루이스트 증권은 약가 인하가 오히려 더 넓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GLP-1 시장의 패러다임이 ‘고가 정책’에서 물량 공세를 통한 ‘규모의 경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승인을 앞둔 오포글리프론은 제조 비용이 저렴한 소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로 만들어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제조 원가가 낮기 때문에 월 약 200달러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되더라도, 릴리의 막강한 제조 역량과 규모를 앞세워 높은 마진을 유지할 수 있다. 즉,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채 폭발적인 매출 성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선다. 이는 최대 연 매출액 1,000억 달러 돌파라는 장밋빛 전망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됐다.
특허 절벽을 넘어서는 ‘자가 부담 브랜드 비즈니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제약사가 겪는 숙명적인 과제, 바로 ‘특허 만료’에 따른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복제약)의 위협이 릴리에게도 존재한다. 현재의 높은 매출과 시가총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허 방어막이 사라진 이후의 대책이 필수적이다.
이에 대해 일라이 릴리의 CEO 데이브 릭스(Dave Ricks)는 “특허 주기를 넘어서는 자가 부담 브랜드 비즈니스(self-pay branded business)”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 제약업계의 문법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접근이다.
그동안 많은 환자가 보험 적용의 사각지대에서 높은 가격 부담을 안고 비만 치료제를 구매해 왔다. 릴리는 소비자 직접 판매(DTC) 플랫폼인 ‘릴리다이렉트’를 통해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고, 더욱 유연한 가격 정책을 제공함으로써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의약품을 단순한 치료제가 아닌,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고 구매하는 ‘브랜드’로 격상시키겠다는 의도다. 환자들이 릴리라는 브랜드에 갖는 인지도와 충성도를 기반으로, 특허 만료 후 저가 복제약이 쏟아져 나와도 시장 지배력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일라이 릴리는 지금 제약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시총 1조 달러라는 숫자는 그들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치료제와 미래 전략이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적표다. AI 시대의 도래 속에서도, 인류의 건강과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바이오 산업의 가치는 결코 퇴색되지 않음을 릴리가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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