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명 증원 전례 답습, 전문가 논의 배제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결정, 의료 대란 재연 우려 확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지난 1월 27일 개최된 제5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 결과에 대해 깊은 유감과 함께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했다. 의협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비전문가들이 다수결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후진적인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2년 전 의료 현장의 처참한 붕괴를 초래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 수급 추계가 미완인 상태에서 비전문가들이 증원 규모를 선택하는 방식은 의료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의협의 이번 성명은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대한 의료계의 강경한 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완의 수급 추계, 비전문가 다수결의 촌극
의협은 보정심의 결정 과정이 전문가의 철저한 논의를 기반으로 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의사수급 추계위원회는 수요 예측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예측이 용이한 공급 추계마저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보정심에 자료를 제출했다. 이로 인해 어떤 안(공급 1안과 2안)이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비전문가들이 다수인 보정심에서 단순히 다수결로 선택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협은 이를 인공위성 발사 결정에 지역 유력인사나 시민단체가 관여하는 것과 같은 비합리적인 상황에 비유했다.
공급 안을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소수에 대한 횡포에 불과하며,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결론을 합당하게 내리지 못한 수급추계위원회에 있다고 의협은 명확히 했다. 결론이 합당하지 못한 상태로 비전문가들에게 결정을 미룬 수급추계위의 제안 사안은 최소한의 참고자료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이를 바탕으로 증원 수를 책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의협의 주장이다.
의과대학 교육 현장의 참담한 현실
의협은 현재 의과대학 교육 현장이 직면한 참담한 상황을 지적하며, 단순히 의대 정원 숫자만 언급되고 있는 현실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2024년과 2025년 학번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예과 과정은 대학에 따라 이전 정원의 4배에 이르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더욱이 본격적인 의학교육이 진행되는 본과 과정에 진급한 후의 상황은 전혀 대비되지 못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약속했던 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들과 교수들의 어려움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의과대학은 정원이 10%만 늘거나 줄어도 교육여건에 큰 변화가 발생하는 특수한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다. 정원 규모 변화는 최소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각 대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제대로 조사된 바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정밀평가를 통해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못할 경우 의사국시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교육 당국이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 사안이다.

지역별·과목별 추계 없는 정원 증원의 위험성
수급추계위원회는 지역별, 임상과목별 추계 역시 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법령에 경과규정을 두어 이 결과를 2027년 2월로 미루어 놓았다. 의협은 이 결과를 본 이후에 증원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만약 지금 특정 지역에 50명의 정원을 추가했는데, 2027년 추계 결과가 20명이 적당하다고 나온다면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의협은 현재 보정심의 논의 과정이 2024년 2월 2천 명 증원안에 대해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지며 의료 대란을 일으켰던 과거와 매우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경고했다. 당시 정부의 일방적 정책 강행으로 큰 혼란이 발생했음에도, 2천 명 증원에 찬성했던 위원들 누구로부터도 책임 있는 사과가 없었다는 점은 이번 보정심 결정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보정심 구조 개편 요구와 전문가 의견 청취 촉구
의협은 단순히 의사를 늘리면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로 흘러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가지고, 추계위 결과의 최대치만을 바라보며 현장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우려를 외면한 채 다수의 힘으로 결정하려는 현재의 모습에 매우 큰 실망을 표했다. 한쪽에서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행태는 정책 심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다.
이러한 이유들로 의협은 보정심의 불합리한 정책 심의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 전문가의 의견이 비전문가 다수에 의해 무시되는 현재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구조와 논의 방식은 철저히 변해야 한다. 의협은 미래 의료환경을 누구보다 더 걱정하고 대비하고자 하며, 지역의 목소리와 응급의료의 절규를 가장 크게 듣고 있는 주체는 의료 전문가들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정부와 정책 결정자들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듣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