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거하며 사업 도왔어도… 법조계 “친분 관계일수록 근로계약 명확히 해야”… 임금 분쟁 판례
8년간 사실상 동거하며 내연남이 운영하는 사업장의 일을 도왔더라도, 사업주의 체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일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는 친소관계에 기반해 사업을 조력한 것에 불과할 경우 임금과 퇴직금 청구권이 성립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판결로, 유사한 노사 분쟁 사례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방법원 2-2민사부는 최근 A씨가 내연 관계였던 사업주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그대로 인용하고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B씨에게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 등 총 1억 2144만 원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A씨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8년간의 협력 관계, 관계 틀어지며 1.2억 임금 소송으로 비화
A씨는 2015년부터 2023년 3월까지 약 8년간 B씨가 운영하는 중고 주방물류 사업장에서 청소 및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두 사람은 2005년부터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B씨가 2012년 이혼한 후 A씨와 사실상 함께 생활하며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23년 3월 B씨로부터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후, 그간 자신이 근로자로 일했다며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A씨가 청구한 금액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임금 9308만 원, 해고예고수당 300만 원, 퇴직금 2460만 원 등 총 1억 2144만 원에 달했다. A씨는 과거 공공기관에 제출한 소득신고서에 자신의 취업 상태를 ‘임시·일용직’으로 기재했고, B씨가 블로그에 ‘직원과 함께 시작했다’는 글을 올린 점 등을 근거로 근로자성을 주장했다.
MBTI 기원과 원리, 왜 4개의 알파벳으로 나를 설명하는가?
근로자성 판단 핵심 기준은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은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법원은 형식적인 근로계약 체결 여부보다는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를 중요하게 본다.
재판부는 “근로자성 판단의 핵심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라며 이 사건에서 종속적 요소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B씨는 A씨와 근로계약을 맺은 적이 없고, 그간 지급한 돈은 ‘생활비’ 명목일 뿐이라며 근로자성을 부인해 왔다.

불규칙적 근무와 생활비 지급… 법원이 본 ‘친소관계 조력’의 근거들
법원은 A씨의 근무 형태와 금전 지급 방식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구체적인 판단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A씨는 근무 기간 중 다른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수개월간 아예 출근하지 않거나 출근이 매우 불규칙했다. 특히 A씨가 B씨에게 ‘오늘 못 나갈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면, B씨가 ‘알았다’고 간단히 답한 사례가 다수였다. 이는 체계적인 근태 관리나 복무 규율이 전혀 없었음을 방증하는 요소로 해석됐다.
둘째, 금전 지급 방식이 월급이나 시급 같은 정기적인 근로 대가가 아니었다. A씨가 B씨에게 지급을 요청한 내용은 월급보다는 주로 병원비, 공과금, 카드값, 축의금 등 생활비 성격이 강했다. B씨 역시 10만 원에서 200만 원씩 불규칙적으로 돈을 송금했으며, 이는 근로에 대한 대가 지급보다는 동거하는 사람에 대한 생활비 지원 성격이 짙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셋째, 업무 수행에 대한 제재나 보고가 미흡했다. A씨가 B씨에게 보고 없이 사업장 물품인 주방용품을 판매하고 그 대금을 사용했음에도 B씨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은 점 역시 사용자-근로자 간의 엄격한 종속 관계를 보기 어렵게 했다.
법조계 “가족·연인 간일수록 계약 관계를 명확히 해야”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하여 “A씨는 특별한 친소관계를 바탕으로 사업장 일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돕고, B씨가 생활비를 지급한 것에 가깝다”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8년간의 사업 조력에 대해 임금과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게 됐다.
김진환 법무법인 지금 변호사는 “연인이나 지인 간은 물론 가족 간에서도 근로 형태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함께 일하다가 관계가 틀어지면서 임금 및 퇴직금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번 판결은 실질적인 지휘·감독의 부재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업 초기 단계에서 근로계약인지 동업 계약인지, 혹은 단순 생활비 지원 관계인지를 계약서 등을 통해 법적 관계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친소관계를 넘어 법적 의무가 수반되는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근태 및 보수 지급 방식을 명확히 규정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죽음의 약에서 칵테일의 미학으로… 퀴닌의 쌉쌀한 맛이 토닉워터를 지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