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설명의무, 미성년자 의료 동의, 법적 기준 마련 시급… 의료 현장 혼란 해소해야
2023년 3월, 의료 소송에서 자주 논의되는 ‘설명의무’가 미성년자를 중심으로 조명됐다.
당시 대법원은 미성년자에게도 설명의무가 필요하다는 기준을 제시하며 의료 행위에 있어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대법원 2023. 3. 9. 선고 2020다218925 판결)
대법원은 미성년자 환자에게도 설명의무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는데, 이 판결은 단순히 법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고 의료 현장의 실무 관행 전반에 걸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성년자 환자와 의료 사고
지난 2016년, 12세 미성년자 A씨는 뇌혈관 질환인 ‘모야모야병’ 의심 진단을 받고, 정밀 검사를 위해 C대학병원에 방문했다. 병원은 추가 검사로 뇌혈관 조영술을 권유했으며, A씨의 부모에게 검사 과정과 위험성을 설명한 후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A씨 본인에게는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조영술 이후 A씨는 뇌경색으로 인해 영구적인 우측 편마비와 언어기능 저하를 겪게 됐다. 이에 부모는 병원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병원의 설명의무가 부모를 통해 적절히 이행되었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A씨 본인에게 설명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병원의 책임을 인정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미성년자 설명의무 기준 제시
대법원은 의료법 제24조의2를 근거로 환자가 미성년자라도 의사결정능력이 있다면 직접 설명을 듣고 동의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반적으로 미성년자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의 보호를 받으며 의료 행위에 대한 설명도 이들을 통해 전달받는 것이 관례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모나 법정대리인을 통해 설명이 전달되지 않아 미성년자의 의사가 의료 행위 결정에서 배제되는 경우, 미성년자가 의료 행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의문을 제기한 경우에는 미성년자 본인에게 직접 설명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즉, 대법원은 부모나 법정대리인을 통한 간접적 설명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미성년자에게 직접 설명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 인정 여부
대법원 판결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의사의 설명의무를 보다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미성년자도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으며, 이는 부모나 법정대리인의 보호 아래 제한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사가 단순히 보호자에게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미성년자가 자신의 신체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사결정능력의 기준, 설명 방식의 적정성, 그리고 의료진의 현실적 부담을 고려한 판결의 세부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남기고 말았다.
때문에 대법원 판결은 의료현장에 혼란을 초래했다. 환자의 연령과 이해도를 고려한 개별화된 설명과 동의 과정을 진행해야 하고, 특히 의사가 보호자를 통해 미성년자에게 전달된 설명이 충분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 본인의 동의가 적절히 이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더 많은 진료기록을 남겨야 하며, 필요시 의사가 미성년자 환자에게도 의료 행위에 대한 설명과 동의를 직접 얻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등 의료진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필요
대법원 판결은 미성년자 환자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음을 분명히 하며, 의료 행위에 대한 설명과 동의 과정에서 미성년자의 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대법원 판결이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부정적이라 할 수 없지만, 의료진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미성년자의 의사결정능력을 추정할 수 있는 기준과 설명의무 이행 방식을 구체화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의료진의 경우 설명의무의 이행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상세한 기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의료진이 보호자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환자와의 소통 과정도 문서화한다면 분쟁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