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C 원숭이 연구 단계적 종료, HIV 백신 개발 중단 위기 과학계 격렬 반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올해 연말까지 원숭이를 이용한 모든 연구를 단계적으로 종료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과학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의제인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기(Make America Healthy Again)’의 일환으로, 미국 보건복지부(HHS)가 우선시하는 동물 연구 축소 정책이 CDC 내부에서 전격적으로 실행된 결과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난 11월 21일, CDC의 샘 베이다(Sam Beyda)가 과학자들에게 원숭이 연구 종료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베이다는 과거 일론 머스크의 정부 효율부(DOGE)에서 근무했던 인물로, CDC의 주요 이니셔티브를 이끌기 위해 임명됐다. 그의 지시는 전염병 연구의 핵심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특히 HIV 분야에서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CDC 애틀랜타 시설에서 사육되던 붉은털원숭이와 돼지꼬리원숭이 등은 지난 수십 년간 인류의 주요 전염병 대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영장류 모델은 HIV, 백일해, 결핵 등 치명적인 질병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연말이라는 촉박한 기한을 두고 연구 종료가 강행되면서, 과학자들은 필수적인 연구 데이터를 확보할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치적 드라이브 속, 연구 중단의 배경
이번 연구 중단 지시는 보건복지부 캐네디 장관이 주도하는 동물 연구 축소 방침을 샘 베이다가 직접 실행에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정치적 의제가 반영된 결과다. 베이다는 정부 효율성을 높이는 임무를 맡아왔으며, 이번 동물 연구 폐지는 광범위한 행정 개혁의 일부로 해석된다. 연구자들은 이 결정이 과학적 필요성보다는 정치적 목표에 의해 좌우됐다고 비판하며, 장기적인 공중 보건 안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경고하고 있다.
CDC의 과학자들은 이 영장류 모델이 없이는 일부 전염병 연구가 불가능하며, 특히 인간에게만 특이하게 발병하는 질병 연구에 있어 영장류 모델의 중요성은 대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갑작스러운 연구 중단은 현재 진행 중이던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이미 투자된 막대한 연구 자원을 무용지물로 만들 위험을 안고 있다. 과학계는 행정부의 효율성 추구와 동물 복지 증진이라는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과학적 근거 없이 연구 기반을 급작스럽게 해체하는 방식에는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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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C 원숭이 연구 단계적 종료, HIV 연구 기반 붕괴 우려
원숭이 연구 중단이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HIV/AIDS 연구다. 워싱턴 국립영장류 연구센터 소장이자 저명한 HIV 연구자인 데보라 풀러 박사는 원숭이 연구가 성병 감염을 예방하는 마이크로비지드(microbicides)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으며, 다른 동물 모델로는 얻기 어려운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특히 HIV 감염률을 99%까지 줄일 수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인 PrEP(Pre-Exposure Prophylaxis)의 개발 역시 원숭이를 이용한 연구를 기반으로 했다. 현재 전 세계 HIV 감염자는 2024년 기준 4,080만 명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심적인 연구 모델을 폐지하는 것은 인류의 보건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 중단을 눈앞에 둔 과학자들은 이 결정이 HIV 분야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일으킬 것을 우려한다. 영장류 모델은 인간의 면역 체계와 질병 진행 과정을 가장 유사하게 모방할 수 있어,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의 최종 단계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돼 왔다. 갑작스러운 연구 중단은 현재 진행 중인 수많은 프로젝트를 좌초시키고, 미래의 전염병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CDC 직원들은 연구 종료를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연구용 원숭이들을 대학이나 국가 영장류 연구센터로 옮겨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연구 동물의 향후 처리와 막대한 재정 논란
연구 중단만큼이나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연구 동물의 향후 처리 방침이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CDC의 원숭이들을 인디애나주 위나맥에 위치한 영장류 보호소인 ‘평화로운 영장류 보호구역(peaceable primate sanctuary)’으로 이동시켜 완전한 은퇴를 보장하려는 방침이다. 이 보호구역은 과거에도 학계 연구소와 협력하여 연구 동물을 이동시킨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을 현실화하는 데는 막대한 재정적 투입이 필요하다.
약 200마리에 달하는 원숭이를 수용하고 정착시키는 데는 약 1,400만 달러(한화 약 190억 원)의 비용과 1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를 중단하라는 지시는 내려졌지만, 그 후속 조치에 필요한 재정 계획이 불투명하여 연구 동물의 복지 문제와 보호소 운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학계는 연구를 지속할 대안을 찾는 동시에, 동물의 안전한 이송과 보호를 위한 자금 확보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원숭이들의 ‘완전한 은퇴’를 약속했지만,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송 계획 자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연방 정부 전반의 동물 실험 축소 정책 확대
CDC의 이번 결정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확대되는 연방 보건 규제 당국의 광범위한 동물 실험 축소 정책의 일환이다. 연방 정부는 동물 연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인간 세포주를 이용한 오가노이드 모델링 등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할 것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이미 다른 주요 기관에서도 구체화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4월, 새로운 단클론 항체 약물에 대한 동물 실험 요건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동물 실험 대체를 위한 조직을 신설하고, 오가노이드 모델링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8,7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장기 모델 및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연방 정부 차원에서 동물 실험 축소 움직임이 가속화됨에 따라, 전통적인 생명 과학 연구 방식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오가노이드나 세포주 모델이 아직 영장류 모델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복잡한 전염병 연구 분야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급진적인 정책 변화가 공중 보건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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