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 양파, 감자 맛의 비밀 – 뇌가 만드는 착각: 사과, 양파, 감자의 맛이 동일하게 느껴지는 과학적 이유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사과, 양파, 감자를 코를 막고 먹어보며 맛이 거의 비슷하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다. 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인체의 감각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흔히 ‘맛’이라고 인지하는 감각은 혀의 미뢰가 감지하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기본적인 5가지 맛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 음식의 ‘풍미(Flavor)’는 미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 온도 감각 등 여러 감각 정보가 복합적으로 통합되어 뇌에서 형성되는 종합적인 인상이다.
특히 후각은 음식의 풍미를 결정하는 데 있어 미각보다 훨씬 더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코를 막아 음식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향기 분자들이 후각 수용체에 도달하는 경로를 차단할 경우, 미각만으로는 재료들을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맛의 인지가 후각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후각이 지배하는 ‘풍미’의 세계
사람이 느끼는 ‘풍미’는 미각과 후각의 상호작용이 핵심이다. 혀의 미뢰는 기본적인 맛 성분을 감지하지만, 음식의 종류를 구별하고 복합적인 맛을 느끼는 능력은 대부분 후각에서 비롯된다. 음식물을 씹을 때 발생하는 휘발성 향기 분자들은 코로 숨을 들이쉴 때 비강 전면으로 들어가는 ‘비강 후각(Orthonasal Olfaction)’뿐만 아니라, 입안에서 목구멍 뒤쪽을 통해 비강 후면으로 올라가는 ‘구강 후각(Retronasal Olfaction)’을 통해 후각 수용체에 도달한다.
특히 구강 후각은 음식의 풍미를 인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 느껴지는 쓴맛은 미각이지만, 커피의 종류(예: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와 브라질 산토스)를 구별하게 해주는 것은 코로 느껴지는 다양한 향기이다. 구강 후각이 없다면, 우리는 음식의 미묘한 차이를 거의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신경과학 및 식품 과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꾸준히 확인됐다 (출처: Chemical Senses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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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감각 통합: 맛과 냄새의 상호작용
미각과 후각 정보는 뇌의 여러 영역에서 통합된다. 혀에서 감지된 미각 신호와 코에서 감지된 후각 신호는 각각 독립적인 경로를 통해 뇌로 전달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뇌의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과 ‘뇌섬엽(Insula)’과 같은 영역에서 만나 하나의 통합된 ‘풍미’ 경험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뇌는 시각, 청각, 촉각 등 다른 감각 정보까지 함께 활용하여 더욱 풍부한 음식 경험을 만들어낸다.
연구에 따르면, 후각 상실이 있는 사람들은 음식의 맛을 단순하고 밋밋하게 느끼거나, 심지어 특정 음식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출처: Journal of Neuroscience). 이는 뇌가 후각 정보 없이 미각 정보만으로는 음식의 정체성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뇌의 복잡한 감각 통합 과정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감각적 인지의 기반이 된다.

코 막기 실험의 과학적 근거
사과, 양파, 감자를 코를 막고 먹을 때 맛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현상은 구강 후각의 차단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세 가지 식재료는 조직감(아삭함), 수분 함량, 그리고 기본적인 미각 성분(예: 감자와 사과의 은은한 단맛)에서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기 매우 독특한 향기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어 평소에는 쉽게 구별된다.
코를 막으면 이러한 독특한 향기 분자들이 비강 후면의 후각 수용체에 도달하는 경로가 막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뇌는 미각과 촉각 정보에만 의존하게 되고, 이때 느껴지는 미미한 맛과 유사한 식감 때문에 세 가지 재료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이 간단한 실험은 후각이 음식의 풍미 인지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로 활용된다 (출처: 심리학 및 인지과학 연구).
후각 상실이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
무후각증(Anosmia) 또는 후각 저하증(Hyposmia)과 같이 후각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는 단순히 음식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문제를 넘어 심각한 건강 및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후각이 손상된 사람들은 음식의 풍미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 식욕 부진을 겪거나, 영양 불균형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이는 음식 섭취를 단순히 영양 공급의 목적으로만 여기게 만들고, 식사의 즐거움을 크게 감소시킨다.
또한, 후각은 가스 누출, 상한 음식, 화재 등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는 중요한 경고 시스템의 역할도 한다. 따라서 후각 상실은 일상생활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 후 후각 상실을 겪는 사례가 늘면서 후각 기능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후각 상실은 우울감과 고립감을 유발하며, 환자들의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됐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 2023년).
우리가 인식하는 음식의 ‘맛’은 혀에서 느끼는 미각을 넘어 후각, 시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통합되어 뇌에서 재구성되는 복합적인 ‘풍미’였다. 특히 코를 막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후각이 음식의 정체성과 즐거움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후각 기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 맛을 즐기는 것을 넘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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