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인들이 거대한 현무암 거석을 운반하기 위해 원시적인 도구와 협동의 힘을 사용하는 고된 작업 장면.
미크로네시아 난마돌 고대 유적의 미스터리: 고대 건축의 한계는 어디였나?
미크로네시아 연방 폰페이섬 연안에 자리한 고대 도시 ‘난마돌’은 흔히 ‘태평양의 베네치아’라 불린다. 열대 바다 한가운데에 수많은 인공 섬과 그 사이를 잇는 복잡한 수로가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거대한 현무암 블록으로 세워진 신비로운 건축물과 치밀하게 계획된 수많은 인공 섬, 그리고 이를 잇는 정교한 운하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대 문명의 경이로운 기술력과 고도의 사회 조직력을 여실히 증명한다. 특히 외딴 태평양 섬에서 이러한 대규모 토목 공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움을 더한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이 거대 도시의 기초가 놓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 12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이 지역을 지배했던 강력한 사우델뢰르 왕조의 수도이자 핵심적인 정치·종교 중심지로 번성하며 그 위용을 떨쳤다.
난마돌 건축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사용된 거대한 현무암 기둥들이다. 이 도시 건설에 총 동원된 현무암의 양은 최대 7만 5천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단일 고대 유적에서 사용된 석재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장 큰 석조 블록의 무게가 무려 50톤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원시적인 기술 수준으로 알려진 문명이 이러한 엄청난 무게의 거석들을 채석장에서 분리해내고, 이를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해상과 육지를 통해 운반한 뒤, 다시 정교하게 쌓아 올려 복잡한 건축물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현대 과학과 공학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수많은 고고학자와 공학자는 물론 대중의 끊임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고대 인류의 능력이 과연 어디까지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놀랍게도, 이토록 번성했던 난마돌은 기원후 17세기경 갑작스럽게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며 활기 넘치던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침묵에 잠겼고, 그 원인 역시 자원 고갈, 외부 침략, 내부 갈등 또는 종교적 변화 등 다양한 가설만 존재할 뿐 명확하고 확실한 증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미스터리한 멸망은 난마돌의 수수께끼를 더욱 깊게 만든다.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으나, 동시에 기후 변화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이름을 올린 이 미스터리 도시는 과연 언제쯤 그 모든 비밀을 풀고 인류에게 고대 문명의 진실을 들려줄 수 있을까?

난마돌, 태평양 한가운데 피어난 거석 문명
난마돌은 폰페이섬 동쪽에 위치한 섬들 사이에 치밀하게 계획되어 세워진 인공 도시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수상 건축 양식을 자랑한다. 이 고대 도시는 약 92개에 달하는 인공 섬으로 구성됐으며, 각 섬은 거대한 현무암 블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섬들은 단순한 육지가 아니라,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복잡하고 효율적인 수로망이 구축됐다. 이러한 수로망은 교통수단이자 방어 체계의 역할을 겸했으며, 도시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각 섬은 사우델뢰르 왕조의 강력한 계급 사회를 반영하듯 귀족, 사제, 행정가 등이 거주하는 구역이거나, 특정 의식용 공간, 또는 창고 등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사용됐다. 특히, 도시의 중심부에는 왕실의 거주지, 신성한 종교 의례를 위한 주요 신전과 제단 등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이 밀집됐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사우델뢰르 왕조의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와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물리적 증거이자 정신적 중심지였다.
수수께끼의 건축 기술: 누가 50톤 현무암을 옮겼을까?
난마돌의 건축 기술은 현대 공학자들에게도 깊은 의문과 경외감을 동시에 남긴다. 채석장에서 엄청난 크기와 무게의 현무암 블록을 분리하고, 이를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해상으로 운반한 뒤, 마지막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려 구조물을 완성하는 과정은 엄청난 규모의 노동력과 고도의 조직력을 요구한다. 특히, 50톤에 달하는 현무암 기둥을 어떻게 들어 올리고 그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안착시켰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현대의 대형 크레인 없이는 상상하기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거대한 돌을 옮긴 방법에 대해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가설은 밧줄과 지레, 그리고 경사면을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50톤이라는 무게 앞에서는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고도로 발달한 고대 문명의 특수 기술이나 알려지지 않은 물리학적 원리가 적용됐을 것이라는 과감한 가설까지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가설들은 난마돌이 단순한 유적을 넘어 인류의 기술적 한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고대 문명의 숨겨진 지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갑작스러운 난마돌 멸망, 그 이유는?
한때 번성했던 난마돌이 번성하던 17세기경, 강력했던 사우델뢰르 왕조는 갑작스럽게 쇠퇴하며 도시를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거대한 문명이 한순간에 버려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큰 미스터리이며, 이에 대한 여러 가설이 제기됐다.
첫째는 자원 고갈설이다. 난마돌과 같은 거석 건축물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거대한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 삼림 자원과 식량 자원이 끊임없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무리한 개발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면서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결국 도시의 유지가 불가능해졌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외부 침략설이다. 폰페이섬의 구전 기록에는 이소켈렐이라는 전사가 외세의 지원을 받아 난마돌을 침략하여 사우델뢰르 왕조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철저히 요새화된 난마돌이 어떻게 외부 세력에 의해 함락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지만, 이 기록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셋째는 내부 갈등설이다. 강력한 왕조의 통치가 백성들에게 과도한 노동과 억압으로 다가왔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기후 변화나 전염병과 같은 환경적 요인도 고려된다. 극심한 가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또는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이 인구 감소와 사회 붕괴를 초래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설은 아직 확정적인 고고학적 증거나 역사적 기록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난마돌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역사적 미스터리로 남아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세계유산 난마돌, 보존과 연구의 과제
난마돌은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 유적은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빈번해지는 폭풍으로 인한 파도 침식, 그리고 외래 식물 침입 등으로 인한 심각한 훼손 위험 때문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포함됐다.
이는 난마돌이 지닌 독보적인 가치만큼이나, 이 유적의 보존이 시급하고 절실함을 의미한다. 난마돌은 단순히 오래된 돌무더기가 아니다. 이곳은 태평양 고대 문명의 놀라운 건축 기술과 고도로 체계화된 사회 조직력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증거인 동시에,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힘이나 잃어버린 기술에 대한 인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난마돌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고고학적 조사와 함께,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보존 노력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고대 태평양 문명의 베일에 싸인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고, 인류의 잃어버린 과거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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