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인의 면허 범위 외 자가 치료에 대한 사법부의 시선

최근 의료계와 법조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주제가 있다. 바로 의료인이 자신의 질병 치료를 위해 스스로 전문의약품을 구입하고 복용하는 행위가 과연 현행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특히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치과의사가 자신의 탈모 치료를 위해 전문의약품을 복용한 사안을 놓고 진행된 일련의 재판 과정은 우리 법률과 사회가 의료인의 자기 치료 행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법의 해석은 의료인의 면허 범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법원의 판단은 이러한 전통적인 시각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사법부가 일련의 판결을 통해 의료인의 자가 진료 행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단순히 면허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하거나 행정 제재를 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인의 직업적 특성과 개인의 자기 결정권 사이의 복잡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법부, ‘개인적 자기 치료’와 ‘공중 보건 위협’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다
이 사안의 핵심은 치과의사 A씨가 자신의 탈모 치료를 위해 전문의약품인 탈모치료제 약 450정을 직접 구매하여 복용했는데, 검찰이 이를 치과의사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로 보고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심과 대구지방법원 제4형사부 항소심 법원 모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의료인의 자기 치료 행위에 대한 법원의 전향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법원은 비록 치과의사가 탈모와 관련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면허 범위 밖에 해당할 여지는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치료 행위’라는 점에 주목했다. 타인이 개입되지 않고, 보건 위생상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치료 행위는 의료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의 자기 치료 행위가 처벌 대상이 아닌 것과 형평성을 맞추는 논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법원은 전문의약품을 스스로 복용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공중 위생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A씨의 지위나 행위의 태양, 투약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보건 위생에 중대한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보기도 어렵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판결은 의료인의 개인적인 자가 진료 행위가 공중 보건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형사 처벌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명확한 입장을 보여줬다.

의약품 ‘취득’과 ‘복용’, 그리고 행정 제재의 타당성 논란
흥미로운 점은 법원이 전문의약품을 ‘취득’하는 행위와 ‘복용’하는 행위를 명확히 구분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에 사용되는 전문의약품을 취득하는 행위에 보건 위생상 위해 발생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규율될 수 있는 부분은 전문의약품을 스스로 ‘복용’하는 행위일 뿐, ‘취득’한 행위까지 의료행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약사법에도 전문의약품 취득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어, 형사처벌이 필요할 만큼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법률의 문언적 해석에 충실하며 처벌의 범위를 신중하게 제한하려는 법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최근 발생한 또 다른 사건은 이러한 논의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한 치과의사가 온라인 의약품 쇼핑몰에서 치과용 의약품과 함께 자신을 위한 탈모치료제를 구매한 후, 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았고 이후 보건복지부로부터 자격정지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치과의사가 자격정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자격정지처분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비록 아직 확정되지 않은 1심 판결이지만, 이는 기존 형사 법원의 판결 논리와 궤를 같이하며, 의료인의 자가 진료에 대한 행정 제재의 적법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행정부의 제재가 사법부의 판단과 배치되는 지점에서 법적 안정성과 일관성이라는 원칙에 대한 중요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의료인의 재량권과 법적 공백,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제언
이번 판결들은 의료인에게 구체적인 임상 상황에서 의료행위의 내용을 선택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의료법령에서 의료인의 직역별 면허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대법원이 ‘의료인의 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에 대한 제재나 처벌에 신중하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됐다.
비의료인도 자가 치료나 자가 처방을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데, 의료인이 자기 치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약사법 역시 소비자가 약국 외에서 의약품을 구입한 경우라도 오남용 위험이 큰 스테로이드 성분 주사제 등 극히 일부 경우에만 과태료를 부과할 뿐, 모든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의료인의 탈모치료제 구매 행위 제재가 부당하다는 판단에 힘을 실어줬다.
물론 의료인의 자가 처방 행위가 전문의약품 오남용 우려를 내포하고 있으며, 의료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판결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법률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여 처벌이나 제재를 확장하는 것 또한 개인의 자기결정권 존중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입법부가 이러한 법적 공백을 인지하고 의료법을 개정함으로써 의료인의 자가 진료와 전문의약품 취득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의료인의 자가 치료 행위에 대한 법적, 윤리적 논의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법적 기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의료인의 면허 범위와 자기 결정권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입법적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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