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는 젊은 의료인들의 모습입니다.
의료 시스템, 이번 위기로 민낯 드러냈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 필요
오랜 기간 지속돼 온 의료 공백 사태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수업 복귀와 수련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의 복귀 논의는 그간 멈췄던 의료 현장의 시계가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신호다. 장기화됐던 의료 대란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의료 현장에 안정이 찾아오는 듯한 모습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온전한 해결이 아닌, 오랜 갈등의 매듭이 풀릴 수 있다는 초기 조짐에 불과하다. 단순히 파열음을 봉합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과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여실히 드러낸 경고음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의료대란의 시작점이었던 정부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사태를 수습하고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결정적인 시점이다. 정부는 이 순간을 위기 극복의 종착역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 의료를 위한 근본적인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전공의 이탈이 보여준 시스템의 허약함
그간 한국 의료는 상급종합병원 중심의 기형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환자와 의료 자원이 집중되는 왜곡된 구조 속에서, 1, 2차 의료기관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병원 간 무분별한 병상 확장 경쟁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특히, 의료 시스템의 최전방에서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젊은 전공의들의 이탈만으로도 대한민국 최상위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이 마비 직전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응급실 기능이 마비되고, 주요 수술이 연기됐으며, 중환자실마저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의료 현장의 취약성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는 소수의 특정 인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숙련된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들이 필수의료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대형 병원 운영의 상당 부분을 지탱하는 현 구조는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의료 전달 체계의 왜곡이 극심하여 경증 환자들까지 대형 병원에 집중되는 현상이 이번 사태로 인해 더욱 심화됐다. 이로 인해 정작 중증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고,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의료 시스템 전반의 개편 필요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의료대란 해결의 열쇠는 정부? 병원장협의회, 전공의 의대생 복귀, 정부가 결단해야
위기 봉합 후 재발 방지 위한 개혁 시급
전공의들의 복귀로 의료 현장이 일견 정상화되는 듯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 큰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 일시적인 봉합은 오히려 의료 시스템의 고질병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무분별한 상급종합병원 병상 확장 경쟁은 필수의료 분야 인력 유출을 가속화하고, 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은 1차 의료기관의 기반을 약화시켜 의료 자원의 비효율성을 심화시킨다.
이로 인해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지역 및 필수의료 분야의 붕괴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는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당장의 갈등 해결을 넘어, 한국 의료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라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의 대립적 태도를 버리고, 의료계는 물론 시민사회, 환자단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의대 정원 재조정 문제뿐 아니라 지역 및 필수의료 강화, 의료 수가 구조 개편, 의료 인력의 공공성 강화 등 근본적인 의료 개혁 의제 전반을 투명하게 다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의료를 위한 로드맵 제시해야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정부는 단기적인 봉합책에 안주하지 말고,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한 종합적인 개혁 로드맵을 즉각 제시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 로드맵에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예를 들어,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강화하여 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쏠림을 완화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및 희귀·난치성 질환 진료에 집중하도록 역할을 재정립하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또한, 지역 의료의 강화를 위해 지역 거점 병원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더불어 의료 인력의 지역 정착을 유도할 실질적인 인센티브 및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확대는 물론이다. 단순히 인력 충원을 넘어, 열악한 근무 환경과 저수가 문제 등 필수의료 기피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젊은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해당 분야에 뛰어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료 수가 체계 개편은 필수의료 살리기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원가 보전이 되지 않아 기피되던 진료 분야의 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 행위의 난이도와 위험도를 고려한 보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오직 근본적인 개혁만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의료계와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혁신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번 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건강한 의료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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