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사 수 늘리면 의료비 감소한다구요?
의사 수 늘리면 의료비 감소? 의료비 증가?
의료 서비스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때문에 국가적으로 의료 인프라의 적정성을 유지하고, 의료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 과제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정부와 의료인들 모두가 합심하여 저수가 구조 속에서도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의료제도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6일 정부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안을 발표하면서 그렇게 칭송받던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 2천명 증원안을 포함한 정부의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지난 2월 20일부터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의대생들도 동맹휴학계를 내고 아직까지 돌아오질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올해 안에 전공의들이 돌아오긴 힘들 것이며, 이 경우 연쇄작용으로 인해 최소 5 ~ 6년은 전문의 배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안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통한 의사 수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농어촌 및 도서 지역에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의사 수가 증가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환자 대기 시간이 줄어들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의사 수가 증가하면 국민 의료비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만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의료계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통한 의사 수 증원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휴진 투쟁 등 강력한 저항도 불사합니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이 급격히 늘어나면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 보다는, 의료수가 현실화 등을 통해 지역 간 의료 서비스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의료계는 또한 의사 수가 너무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는 의료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우봉식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의대 정원이 2000명 증가할 경우 2040년 요양급여비용 총액은 약 35조원 늘어나고, 국민은 1인당 월 6만원의 건보료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사 수 증가”라는 명제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진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의료계는 오히려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말일까요?
여기서 먼저 살펴봐야 할 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공급자 유발 수요 이론”입니다.
공급자 유발 수요이론은 의료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 이론은 의료 서비스 제공자가 환자의 진료 수요를 인위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이론으로, 의료 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과잉 진료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이 이론은 196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로머(Milton Roemer)가 주창하였는데, 로머는 “병상을 늘리면 환자가 더 많이 생긴다”는 ‘로머의 법칙’을 통해 의료 서비스 제공자(의사 등)와 수요자(환자) 간에는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환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나 필요한 치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사의 권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에 의료 서비스 제공자는 추가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의료 제공자가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예: 민간 병원, 사립 병원 등) 더욱 두드러진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캐나다의 한 연구에서는 의사 수가 증가하면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가 늘어나고, 이는 의료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반대의 이론도 있습니다. 의사 수가 증가하면 경쟁이 치열해져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일반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기초한 견해인데,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의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의료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습니다. 경쟁이 증가함에 따라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 수와 의료비용의 관계를 분석한 여러 연구가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의사 수가 증가한 지역에서 의료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공급자 유발 수요이론을 지지하는 데이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연구에서는 의사 수 증가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높여 전체적인 의료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용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일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의료 인프라의 효율성을 높이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며,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방지하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합니다. 서로 간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정책 결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한 가지 사건은 참고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모두에게 잊혀졌지만,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에도 정부는 의약분업을 하면 약제비가 줄어들고 국민부담도 작아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의약분업 이전 병원·의원·약국에 할인·할증 등으로 뿌려지던 의약품 가격의 거품을 빼서 처방료·조제료로 돌리면 된다고 단순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계산은 들어맞지 않았고, 이는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파탄으로 이어졌으며, 건강보험료 인상 등으로 인한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의협 등 의료계는 정부의 의약분업 시행을 반대하며, 파업까지도 불사했습니다만, 정부가 의약분업을 밀어붙인 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작정하면 못할 정책은 없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힘이 센 것이지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구요.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힘이 세다하여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으로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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