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부족한 아이”, 경계선 지능장애 100만 명의 고독한 싸움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기본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르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고, 복잡한 지시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숙제는 늘 빠뜨리고, 친구들의 농담에는 늦게 반응한다. 이들은 지적장애로 분류되지도, 그렇다고 비장애인으로 완벽히 기능하지도 못하는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지능지수(IQ) 71에서 84 사이에 분포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인구의 약 13.6%, 추정치로 100만 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거대한 인구 집단은 사회의 가장 깊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어려움은 단순히 학습 능력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복지 시스템의 문턱은 너무 높고, 사회는 이들에게 비장애인과 똑같은 기대를 요구한다. 지원은 전무한 상태에서, 이들은 성장 과정 내내 좌절과 소외를 경험하며 성인기에 접어든다. 이처럼 경계선 지능장애인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의 시급성을 매우 크다.

느린 학습자,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투명 인간’ 취급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진 아동들은 초등학교 입학 시점부터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들은 지적장애 판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특수교육 대상자로 지정되지 않는다. 일반 학급에 배치되지만, 평균적인 학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느린 학습자’로 불린다. 교사들은 이들에게 개별적인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고, 결국 학습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진다.
특히 문제는 사회성 발달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복잡한 사회적 규칙이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해 친구들 사이에서 오해를 사거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들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단순히 ‘노력을 안 한다’거나 ‘눈치가 없다’고 비난하기 쉽다”며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학업 스트레스와 더불어 정서적 불안정성이 커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동반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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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기 자립의 벽: 취업과 경제적 불안정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진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마주하는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낮은 학력과 부족한 사회성으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매우 어렵다. 이들은 단순 반복 업무나 저임금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마저도 복잡한 업무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어 이직이 잦다.
직업 훈련 프로그램 역시 이들에게는 충분히 맞춤화돼 있지 않다. 지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난이도가 너무 낮고,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결국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재정 관리가 미숙해 경제적 자립에 실패하거나, 사회생활 중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범죄에 노출되는 등 2차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직업 훈련을 넘어, 실질적인 생활 기술 및 정서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행 복지 시스템은 IQ 70 이하인 지적장애인에게만 지원의 문턱을 열어주면서, 100만 명에 달하는 경계선 지능인들을 법적 비장애인으로 분류해 모든 공적 지원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느린 학습자 지원법’을 제정하여 교육, 고용, 정서 상담을 아우르는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복지 시스템의 역설: 지원받지 못하는 100만 명
경계선 지능장애가 ‘사회적 사각지대’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현행 복지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대한민국 복지 시스템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장애 등록’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IQ 71~84)은 지적장애(IQ 70 이하) 기준에 미달하기 때문에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법적으로 비장애인으로 분류돼 어떠한 복지 혜택이나 교육 지원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복지 시스템의 역설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안긴다. 공적 지원이 없으니 모든 책임은 가족에게 전가되며, 가족들은 사설 기관의 비싼 상담이나 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느린 학습자 지원 조례’ 등을 통해 지원을 시작했지만, 이는 전국적인 통일된 정책이 아니며 지원 범위와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경계선 지능장애에 대한 국가 차원의 명확한 정의와 지원 근거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회적 인식 개선과 맞춤형 지원 체계 구축 시급
경계선 지능장애인들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사회적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 이들을 단순히 ‘게으르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대신, 인지적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속도로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 교육 현장에서의 조기 발견 및 개입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선별 검사를 의무화하고, 일반 학급 내에서도 개별화된 보충 학습을 제공하는 ‘통합 지원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인 경계선 지능장애인을 위한 실질적인 복지 및 고용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현행 장애인 복지법의 틀을 벗어나, 이들을 위한 별도의 ‘느린 학습자 지원법’ 등을 제정하여 직업 훈련, 정서 상담, 주거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10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사회의 짐이 아닌, 잠재력을 가진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이들에 대한 방치는 결국 사회적 비용 증가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어딘가 부족한 아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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