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국민 70프로 의사가 처방한 약 선호한다 응답, 의약분업 선택제 도입 찬성도 74.2% 달해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거진 의약품 수급 불안정 사태를 빌미로 정치권 일각에서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어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실제 의료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들은 약사의 임의 조제보다 의사의 처방권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현행 의약분업 제도의 경직성을 비판하며 환자가 조제 장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의약분업 선택제’ 도입에 대해 국민 4명 중 3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분명 처방 관련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전문가 신뢰도 격차 확인… “약사 대체조제보다 의사 처방 원해”
이번 조사는 성분명 처방이 도입될 경우 약의 선택 주체가 의사에서 약사로 변경되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안전성 검토가 배제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설문 결과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투약’의 기준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가격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약 선택의 선호도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70.2%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반면 ‘약사가 대체조제한 약’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7.3%에 불과했다. 두 응답 간의 격차는 약 10배에 달한다. 이는 국민들이 단순한 약품의 교환보다는 자신의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 과정을 설계한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법무부가 해당 법안에 대해 “제한적 성분명 처방 의무화가 국민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에 대해, 국민의 62.4%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의약품 수급 편의성보다는 투약의 안전성과 책임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다.
성분명처방 vs 상품명처방, 과연 20년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문제인가?
제도 이해도 낮은 ‘정보 비대칭’… 책임 소재의 사각지대 심각
이번 조사에서는 국민들이 성분명 처방이나 대체조제 제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정보의 깜깜이’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성분명 처방 법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거나 안다는 응답은 55.5%였으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15.4%에 그쳤다. 반면 ‘전혀 모른다’는 응답은 44.5%에 달했다. 약사가 의사의 처방약을 다른 약으로 바꾸는 ‘대체조제’ 제도와 이를 환자에게 알려야 하는 ‘고지 의무’에 대해서도 인지율은 60% 수준이었으나, 정확한 절차를 알고 있는 상세 인지층은 20% 내외에 머물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약화 사고 발생 시의 책임 소재다. 현행법상 약사가 대체조제를 한 후 부작용이나 약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설문 결과, 국민의 57.1%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약사가 약을 바꿔 조제했음에도 문제가 생기면 의사가 책임을 져 줄 것이라는 막연한 오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의협 황규석 범대위 홍보위원장은 “국민들이 책임 소재의 공백 상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성분명 처방이 강행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 될 것”이라며 “의료 현장은 책임 공방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법무부 의견을 인용해 “성분명 처방은 사실상 약사에게 폭넓은 대체조제를 허용하면서도, 환자에게 알릴 의무나 의사의 동의 절차를 생략하게 만들어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5년 된 의약분업, 국민은 변화를 원한다… ‘선택분업’ 찬성 압도적
이번 조사는 시행 25년을 맞은 의약분업 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와 개혁 요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의협은 이번 설문에서 환자가 병원 내 조제와 약국 조제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의약분업 선택제(국민 선택분업)’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무려 74.2%에 달했다. 이는 이번 조사 항목 중 가장 높은 찬성률로, 국민들이 강제적인 분업 규제로 인한 불편함 대신 ‘나의 선택권’과 ‘편의성’을 돌려받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메르스와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유행이나 특정 약 품절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 시,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약을 조제하는 ‘원내 조제’ 허용에 대해서도 국민 70.0%가 찬성했다. 이는 경직된 현행 분업 제도보다는 위기 시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연한 의료 시스템을 원하는 국민의 눈높이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의협, “입법 철회하고 국민 선택권 보장 논의 시작해야”
의협은 이번 데이터가 보여주는 민심이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은 성분명 처방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의사의 처방권을 신뢰하고 있고, 나아가 환자의 편의와 선택권이 무시된 현행 의약분업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위원장은 “국민 대다수가 제도의 구체적 위험성과 책임 소재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성급히 성분명 처방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데이터가 주는 경고”라며 “정부와 국회는 책임 소재조차 불분명한 성분명 처방 법안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의협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의약분업 선택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의협 측은 “앞으로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및 국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직역 이기주의가 아닌 국민 건강과 편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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