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처방 vs 상품명처방, 안전성의 딜레마는 없나?
우리나라 의료계의 고질적인 논쟁거리인 ‘성분명처방’ 도입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약분업 시행 이후 20년 넘게 지속된 이 논쟁은 단순히 처방 방식을 바꾸는 차원이라기 보다는 약가 구조 개편, 국민 의료비 절감, 환자 선택권 보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의사와 약사의 역할 재정립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내포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상품명을 지정해 처방하는 ‘상품명처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환자가 약국에서 해당 상품명으로 지정된 약만을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약의 주성분만을 기재하고, 약사가 약효가 동등한 여러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중 하나를 선택해 환자에게 조제하는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성분명처방이 약가 경쟁을 촉진하고 의료비 부담을 줄일 핵심 열쇠라고 주장하지만, 의사협회는 의약품 안전성과 처방권 침해 문제를 들어 강력히 반대한다. 특히 최근 필수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감기약, 소아약 등에 한정해 성분명처방 단계적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법안이 나오자, 의료계는 ‘국민 안전 포기 선언’이라며 결사반대를 외친다. 이 해묵은 갈등에 대한 해법은 있는 것일까?

상품명처방과 성분명처방의 명과 암
상품명처방은 의사가 특정 상품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의사가 자신의 임상 경험을 통해 가장 효과가 좋거나 부작용이 적다고 판단한 특정 제약사의 약을 환자에게 계속 투여함으로써, 약물 치료의 연속성과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의약품 부작용 발생 시 제조사와 처방 의사 간의 책임 소재가 비교적 명확해지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특정 약제에 대한 시장 독점을 강화하고, 약가 인하 경쟁을 제한하여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단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약가 인하 문제는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 문제이며, 제네릭에 대한 약가는 여러 제도적 장치로 마련된다. 또한 정부는 제네릭 에 대한 사용 장려하기 위해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보험약가 오리지널 약가 대비 80%를 산정하는 등의 정책을 취하고 있어(오히려 정부가 제네릭에 대한 일정한 약가를 보장), 단순히 상품명처방으로 인해 약가 인하가 무조건 제한된다고 볼 수는 없다.
반면, 성분명처방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약가 인하 효과와 국민 의료비 절감이다. 동일 성분의 제네릭 간 경쟁을 유도해 가격을 낮추고, 환자에게도 저렴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또한, 약사에게 전문성을 발휘해 가격과 재고 상황을 고려한 최적의 약을 선택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약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성분명처방은 환자 안전 문제와 처방권 침해라는 심각한 단점을 내포하며, 특히 의약품 안전성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의사-약사 간 ‘네 탓’ 공방이 벌어질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오리지널 대비 보험약가의 80%를 인정하는 우리나라 약가 제도에서 약가 인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반론 또한 존재한다.
안전성 딜레마: 의료계의 우려와 제도적 보완책의 필요성
성분명처방의 안전성 논란은 결국 제네릭 의약품의 품질 동등성 문제로 귀결된다. 의약품당국은 제네릭 허가 시 ‘의약품동등성시험’을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과 효능·효과가 동등함을 입증하도록 한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이다. 약사 사회는 생동성시험을 통과한 제네릭은 대체 조제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현재의 생동성시험 기준이 완벽한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의사들은 생동성시험이 통상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단회 투여 후 혈중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만성 질환자나 노인의 경우 약효 발현의 미세한 차이가 임상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치료 범위가 좁은 약물(Narrow Therapeutic Index Drug, NTID)의 경우, 생동성시험에서 허용하는 오차 범위가 실제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위험성으로 부각된다. 주성분 외에 제형, 첨가제, 제조 공정의 미세한 차이도 약물의 안정성과 흡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안전성 우려를 키우는 주된 근거다.
이에 의료계는 성분명처방 도입 논의는 이러한 안전성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후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보건 당국은 제네릭 의약품의 품질 관리 기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대폭 강화하고, 생동성시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고, 또한, 위탁·수탁 방식으로 제조하는 제네릭에 대한 제조 및 품질관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성분은 같으나 대체 조제가 불가능하거나 위험성이 높은 약물 목록(Negative List)을 지정하여 의사의 처방권 보호 장치를 선행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분명처방의 도입은 약가 절감이라는 이점보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완비된 후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과제라는 주장이다.

해외 정책 사례 비교: 의무화와 자율의 명확한 배경
사실 성분명처방은 해외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며, 일률적으로 의무화된 제도는 아니다. 성분명처방 의무화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은 주로 약품비 절감을 통한 국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제네릭 사용 활성화를 위해 의사의 성분명처방(INN prescribing)을 의무화한다. 이들 국가는 강력한 규제 정책을 통해 제네릭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약가를 인하한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의 경우 성분명처방을 시행해도 의약품안전성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나라와는 달리 제약회사들의 제네릭의약품에 대한 무분별한 생산을 막는등 품목수를 제한한다.
반면,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성분명처방을 의무화하기보다는 ‘권장’하거나 의사에게 상품명 또는 성분명 선택권을 부여하고, 약사에게 대체 조제 권한을 주는 자율적 시스템을 채택한다. 미국은 주(州)별로 규정이 달라 성분명처방을 권장하지만, 의사가 특정 상품명 처방을 고수하면 대체 조제를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는 등 처방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한다. 또한, 일본과 같이 의약품 품질 관리와 환자 안전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국가에서는 성분명처방을 강제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는 약가 통제와 함께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환자의 신뢰를 중시하며, 약효 동등성이 확보된 경우에만 대체 조제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균형점을 찾는다.
이에 일부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72개국 중 성분명처방을 의무화한 국가는 37% 정도이며, 의무화되지 않은 국가가 절반 이상이다. 이는 성분명처방이 전 세계적으로 ‘필수적 추세’가 아니며, 각국의 의료 환경과 재정 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될 정책이라는 의미다.
성분명처방 도입 논의는 의료비 지출 증가라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 우리나라 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숙명적인 논의이긴 하다. 그러나 의사협회가 제기하는 환자 안전과 처방권 침해라는 위험 요소를 경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에 보건당국은 의약품 안전성 확보를 위한 생동성시험 기준의 엄격한 재정비, 제네릭 품질 관리 시스템 강화, 의사의 처방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선행적인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안전망 구축을 통해 의사와 국민들의 안전성 우려가 불식됐을 때, 그 때가 되어서야 성분명처방의 도입 여부나 기타 다른 제도의 도입 여부를 심도 있게 검토해 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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