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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이란 무엇일까? 전설적인 야구선수 루 게릭이 투병하다 사망하면서 그의 이름이 붙어
우리에게 ‘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친숙한 루게릭병은 정식 명칭이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인 신경 퇴행성 희귀 질환이다. 이 병은 전설적인 야구선수 루 게릭이 투병하다 사망하면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루게릭병은 우리 몸의 중요한 신경 시스템인 운동 신경 세포가 점차 사라지면서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루게릭병은 발병 후 평균 수명이 3~5년에 불과할 정도로 치명적이며, 현재까지 완치법이 없는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루게릭병이 무엇인지, 왜 생기는지, 어떤 증상을 보이고 어떻게 진단하며 치료하는지 자세히 알아본다.

우리 몸의 지휘자, 운동 신경 세포와 루게릭병
우리 몸의 모든 움직임은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 신경 세포’의 지시를 따른다. 이 운동 신경 세포는 마치 군대의 지휘관처럼 근육들에게 ‘수축해라!’, ‘이완해라!’ 같은 명령을 내린다. 운동 신경 세포는 뇌와 척수에 위치한 상위 운동 신경 세포(Upper Motor Neuron)와 뇌간 및 척수에 위치하여 근육으로 직접 명령을 전달하는 하위 운동 신경 세포(Lower Motor Neuron)로 나뉜다. 그런데 루게릭병은 바로 이 지휘관 역할을 하는 상위 및 하위 운동 신경 세포들이 손상되고 파괴되는 질병이다.
신경 세포가 망가지면 뇌의 명령이 근육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근육은 힘을 잃고 점점 말라간다(위축). 처음에는 팔다리 근육에서 시작해 점차 몸통과 호흡 근육까지 마비가 진행되며, 결국에는 스스로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해져 생명을 위협한다. 신경 세포의 손상은 근육 위축 외에도 근육이 저절로 움찔거리는 근육 잔떨림(근육의 떨림)이나 근육 강직(경직) 등의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루게릭병은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어 치명적인 질환으로 분류되며,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키고 가족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준다.
루게릭병, 왜 생기는 걸까? 미스터리의 원인들
안타깝게도 루게릭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루게릭병은 단일 원인이 아닌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주요 가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유전적 요인: 루게릭병 환자 중 약 5~10%는 가족력이 있는 ‘가족성 ALS’로 분류된다. 이는 특정 유전자(예: SOD1, C9orf72, TARDBP, FUS 등)의 돌연변이가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들 유전자 변이는 단백질의 비정상적인 응집이나 세포 내 독성 물질 축적 등을 유발하여 운동 신경 세포의 손상을 촉진할 수 있다고 알려진다. 대부분 우성 유전 형태로 나타난다.
- 환경적 요인: 특정 중금속(예: 납, 수은) 노출이나 독성 물질(예: 살충제), 바이러스 감염, 흡연, 특정 직업군(군인, 운동선수) 등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가설도 연구 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특정 환경 요인과 루게릭병 발병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확립되지 않았다.
- 흥분독성: 신경 세포가 과도하게 흥분하여 스스로 파괴되는 현상이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Glutamate)이 과도하게 분비되거나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운동 신경 세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손상시키는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 산화 스트레스: 우리 몸의 세포를 손상시키는 유해한 산소 분자(활성 산소)가 너무 많아져 세포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다. 활성 산소가 축적되면 DNA, 단백질, 지질 등 세포 구성 성분을 손상시켜 신경 세포의 퇴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 면역학적 이상: 자가면역 질환처럼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신경 세포를 공격하는 등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염증 반응과 면역 세포의 활성화가 운동 신경 세포의 손상과 퇴행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된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복합적인 원인을 찾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여러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다인성 가설이 지배적이다.

알아차리기 힘든 시작과 점진적 진행: 루게릭병의 증상과 진단
루게릭병의 초기 증상은 매우 미묘해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예를 들어, 손이나 발의 힘이 약해지거나, 근육이 저절로 떨리는 경련(근육의 떨림)이 나타나거나, 평소보다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식이다. 마치 달리기를 즐겨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평소보다 발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젓가락질이 미숙해지거나, 글씨를 쓰는 것이 힘들어지는 정도의 변화로 시작될 수 있다. 초기에는 한쪽 팔다리에 국한된 약화나 보행 장애(발이 끌리는 족하수), 또는 발음이 어둔해지는 구음 장애나 삼키기 어려워지는 연하 곤란으로 시작될 수 있다. 루게릭병은 크게 사지 근력 약화로 시작되는 ‘사지 발병형(Limb onset)’과 언어 및 삼킴 기능 문제로 시작되는 ‘연수 발병형(Bulbar onset)’으로 나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상은 점진적으로 악화된다. 사지 근력 약화가 전신으로 퍼지고, 말하는 데 어려움(구음 장애)을 겪거나,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지고(연하 곤란), 결국에는 호흡 근육마저 마비돼 인공호흡기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근육 약화 외에도 근육 경련, 근육통, 근육 위축, 과도한 침 분비, 감정 조절의 어려움(가성 연수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배변, 배뇨 기능과 성 기능은 유지되며, 놀라운 점은 이렇게 몸이 마비되어 가는 중에도 대부분의 환자는 생각하는 능력(인지 기능)이나 시각, 청각, 촉각 같은 감각 기능은 온전히 유지된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환자에서는 경미한 인지 기능 변화나 행동 변화가 동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진단은 주로 환자의 증상과 신경학적 검진, 그리고 근전도 검사(근육과 신경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여 운동 신경 세포의 손상 여부 확인)나 신경전도 검사(신경의 전기 신호 전달 속도 측정)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근전도 검사는 루게릭병의 특징적인 전기 생리학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진단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루게릭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들(예: 다발성 경화증, 목 디스크로 인한 척수 압박, 다른 근육병 등)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 MRI 촬영을 통해 다른 뇌 질환을 감별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여 가족성 루게릭병을 확인하기도 한다. 진단은 전문가의 종합적인 판단과 오랜 기간에 걸친 추적 관찰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희망을 찾는 여정: 치료와 최신 연구 동향
아직 루게릭병을 완치하는 치료법은 없다. 하지만 질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질병 진행을 다소 지연시키는 효과를 보이는 약물로는 릴루졸(Riluzole)과 에다라본(Edaravone)이 사용되고 있다. 릴루졸은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의 분비를 억제하여 신경 세포의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며, 에다라본은 활성 산소에 의한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신경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약물들은 루게릭병의 진행을 멈출 수는 없지만, 환자의 생존 기간을 수개월 연장하고 증상 악화를 늦추는 데 기여한다.
약물 치료 외에도 환자의 일상생활을 돕는 ‘대증 치료’와 ‘지지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지면 위루술(위장에 직접 영양을 공급하는 통로)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아 체중 감소를 막고 흡인성 폐렴을 예방한다. 호흡이 어려워지면 비침습적 인공호흡기(NIV)나 침습적 인공호흡기 같은 호흡 보조 장치에 의존하기도 한다.
또한 물리치료는 근육의 경직을 완화하고 관절의 움직임을 유지하며, 재활 치료는 보행 보조기나 휠체어 등 보조 기구를 사용하여 환자의 독립성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돕는다. 언어치료는 의사소통 능력을 돕기 위해 대체 의사소통 장치(AAC) 사용법을 교육하거나 삼킴 훈련을 진행한다. 심리 상담은 환자와 가족이 질병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다학제적 접근 방식은 환자와 가족의 삶의 부담을 덜어주고, 현재의 삶을 더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루게릭병은 인구 10만 명당 1~2명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하지만 이 병이 환자와 가족에게 주는 육체적, 심리적, 경제적 고통은 매우 크다. 다행히 최근에는 유전자 치료, 줄기세포 치료,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약물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점차 희망적인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자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유전자 치료제(예: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티드)는 임상 시험 단계에 있으며, 줄기세포 치료는 손상된 신경 세포를 대체하거나 신경 보호 물질을 분비하여 질병 진행을 늦추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여 조기 진단 및 질병 진행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계속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같은 사회적 캠페인은 루게릭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연구 기금 마련에 크게 기여했다. 과학자들과 의료진,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루게릭병 정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언젠가 루게릭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완치의 희망을 선사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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