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의 대명사 리도카인, 국소마취제 넘어 ‘심장 안정화’ 역할 재조명, 리도카인의 임상적 이중성
치료를 받거나 작은 상처를 봉합할 때, 우리는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마취 주사’를 맞는다. 이 주사의 주성분은 대개 리도카인(Lidocaine)이다. 리도카인은 통증을 차단하는 국소마취제로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리도카인의 역할을 통증 제어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는 리도카인이 전혀 다른 임무를 수행한다. 바로 심장의 비정상적인 박동, 즉 부정맥을 치료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항부정맥제’로서의 역할이다. 리도카인이 어떻게 신경 신호와 심장 박동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생명 현상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지, 그 임상적 이중성과 작용 기전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리도카인의 핵심: 나트륨 채널 차단이라는 공통 분모
리도카인이 국소마취제와 항부정맥제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작용 기전이 신경 세포와 심장 세포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나트륨 채널(Sodium Channel)’을 차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신경 세포에서 나트륨 채널은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활동 전위(Action Potential)를 발생시키는 핵심 통로다. 리도카인이 이 채널을 막으면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않아 마취 효과가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심장 세포에서도 나트륨 채널은 심장 박동을 유도하는 전기 신호의 시작점이다. 심장 근육 세포의 활동 전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불규칙해질 때 부정맥이 발생하는데, 리도카인은 심장 세포의 나트륨 채널을 차단하여 전기적 흥분성을 낮추고, 특히 손상된 심장 조직의 비정상적인 자동능(Automaticity)을 억제한다. 이로 인해 심장 박동이 안정화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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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마취제로서의 리도카인: 통증 없는 치료 환경 조성
리도카인은 1940년대에 개발된 이래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아미드(Amide) 계열 국소마취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 인기는 빠른 작용 발현 시간과 중간 정도의 지속 시간, 그리고 비교적 낮은 독성 덕분이다. 치과 시술, 피부과 시술, 작은 외과 수술 등에서 침윤 마취(Infiltration Anesthesia)나 신경 차단 마취(Nerve Block)에 사용되며, 정맥 주사 형태로 투여되어 국소 통증 완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특히 리도카인은 에피네프린과 혼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에피네프린이 혈관을 수축시켜 리도카인이 마취 부위에 더 오래 머물게 함으로써 마취 효과를 연장하고 전신 흡수를 늦춰 독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조합은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임상 현장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 민병원 신병훈 마취원장(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은 “리도카인을 국소마취제로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전신 독성의 예방이라며, 국소 마취 시 에피네프린과 혼합해 혈관을 수축시켜 마취 효과를 연장하고 전신 흡수를 늦추는 것이 핵심이며, 중추신경계 독성이나 심혈관계 독성을 유발하지 않도록 환자의 간 기능과 투여 속도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심장 안정화 역할 재조명: 심실성 부정맥 치료의 구원투수
한편 리도카인은 항부정맥제 분류상 Class Ib에 속한다. 이 분류는 심장 활동 전위의 3단계(재분극 초기)에 작용하여 활동 전위 지속 시간을 단축시키는 특징을 갖는다. 리도카인은 특히 심근경색(Myocardial Infarction)이나 심장 수술 후 발생하는 심실성 부정맥, 즉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이나 심실빈맥(Ventricular Tachycardia)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다.
심근경색 발생 시 손상된 심장 조직 주변에서는 전기적 불안정성이 극도로 높아져 치명적인 부정맥이 발생하기 쉽다. 리도카인은 이러한 허혈성 손상 조직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 발생을 억제함으로써 심장을 안정화한다. 이는 심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응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치료 옵션이 된다. 리도카인은 경구 투여 시 간에서 빠르게 대사되므로, 항부정맥제로 사용할 때는 주로 정맥 주사(IV)를 통해 투여된다.
투여 경로와 용량에 따른 독성 관리의 중요성
리도카인의 이중성이 주는 혜택만큼이나, 그 사용에는 엄격한 주의가 필요하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로 사용될 때도 과량 투여되거나 혈관 내로 직접 주입될 경우 전신 독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 독성은 중추신경계와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중추신경계 독성으로는 현기증, 졸음, 이명, 심하면 경련이 발생할 수 있다. 심혈관계 독성은 리도카인의 항부정맥 작용이 지나치게 강하게 나타나 심장의 전도 시스템을 억제함으로써 서맥(느린 심장 박동)이나 심장 정지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리도카인을 항부정맥제로 사용할 때는 환자의 심장 상태와 간 기능, 투여 속도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하며, 특히 Class I 항부정맥제는 심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 신중한 용량 조절이 필수적이다.
리도카인, 응급의학의 다재다능한 영웅으로 남다
리도카인은 단순한 통증 완화제를 넘어, 응급 상황에서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핵심 약물로서 의학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나트륨 채널 차단이라는 단일 기전이 신경과 심장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약리학적 통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리도카인의 정맥 주입이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이나 특정 두통 치료에도 활용되는 등 그 적용 범위가 계속해서 확대되는 추세다. 리도카인의 이중적 역할은 의약품이 가진 다면적인 잠재력을 보여주며, 임상 현장에서의 정확한 이해와 신중한 사용이 환자의 안전과 치료 성공률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됨을 시사한다.
서울 민병원 신병훈 마취원장(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은 “리도카인이 국소마취제라는 익숙한 역할과 달리, 응급실에서 심장 안정화 역할을 수행할 때는 반드시 정맥 주사로 투여된다며 나트륨 채널 차단이라는 단일 기전이 심실성 부정맥, 특히 허혈성 손상 조직의 비정상적인 전기적 흥분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하여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치료 옵션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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