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마셔도 살찐다’는 자기기만의 함정과 기초대사량 붕괴의 실상
현재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의 실패 원인을 자신의 ‘체질’ 탓으로 돌리곤 한다. 특히 고도비만 환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나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다”라는 말은 의학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심리적 위안과 생리학적 오해 사이에서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상당수는 자신이 먹는 양에 비해 지나치게 살이 찐다고 호소하지만, 정밀한 식단 일기 기록과 대사량 검사를 거치면 그 이면에 숨겨진 치명적인 함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인체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관리하는 방식인 ‘기초대사량’의 비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은 의학적 불능이다
의학적으로 물은 0칼로리다. 물이 체내에 들어와 지방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제주 자연주의의원 신영태 원장은 “대중이 체중과 체지방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일시적으로 체중이 느는 현상은 체내 수분 정체나 염분 섭취에 따른 부종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지방이 축적되는 ‘비만’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즉, 짠 음식을 먹고 물을 많이 마시면 삼투압 현상에 의해 몸이 붓고 체중계 숫자가 올라갈 수 있지만, 이것이 곧 살이 찌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진짜 문제는 ‘무의식적 섭취’에 있다. 실제 스스로 적게 먹는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의 실제 섭취 칼로리를 추적했을 때 본인이 인지하는 것보다 평균 40% 이상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리 과정에서 들어가는 기름, 식후에 가볍게 마신 음료 한 잔, 한 입만 먹었다고 생각한 간식 등이 쌓여 하루 총 대사량을 훌쩍 넘긴다. “물만 마셨다”는 기억은 본인에게 유리한 기억만 남기는 선택적 기억 삭제의 결과인 경우가 허다하다.
기초대사량 붕괴가 불러온 연비 좋은 몸의 비극
하지만 환자들의 억울함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다이어트 실패와 불규칙한 식습관은 인체의 기초대사량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기초대사량은 우리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등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소모하는 에너지다. 서울 민병원 내분비내과 김성수 원장은 “굶는 다이어트를 반복하면 인체는 이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여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는 ‘절전 모드’에 돌입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근육량이 줄어들고 기초대사량이 낮아진 상태에서는 남들과 똑같이 먹어도 에너지가 남게 되며, 이 남은 에너지는 즉시 지방으로 저장된다”고 분석했다.
이것이 바로 ‘연비가 너무 좋은 몸’의 비극이다. 자동차로 치면 적은 기름으로 멀리 가는 효율적인 상태가 된 것이지만, 다이어트 관점에서는 최악의 상태다. 기초대사량이 정상 범위보다 현저히 낮은 고도비만 환자들은 실제로 평범한 식사량만 유지해도 체중이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아주 적은 에너지조차 알뜰하게 지방으로 바꾸는 상태가 되었음을 뜻한다.

다이어트 강박이 만든 호르몬의 배신
체중 조절에는 칼로리뿐만 아니라 호르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특히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과 식욕을 돋우는 ‘그렐린’의 불균형은 고도비만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코르티솔 호르몬 수치를 높여 복부 지방 축적을 가속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고도비만 환자들은 흔히 “나는 의지가 약해서 못 뺀다”고 자책하지만, 사실은 호르몬 체계가 무너져 의지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굶주림과 대사 저하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도비만 치료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절식이 아니라, 망가진 대사 엔진을 다시 가동하는 데 두어야 한다. 단백질 위주의 규칙적인 식단과 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보존하고,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호르몬 균형을 되찾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물만 마셔도 살찐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이 왜 에너지를 태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다이어트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민병원 김경래 내과 대표원장(내분비내과)에게 듣는 비만과 기초대사량 궁금증
Q.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환자들의 호소,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실제로 물 자체가 지방이 되는 일은 없다. 다만 대사 능력이 극도로 저하된 환자들은 아주 적은 양의 칼로리 섭취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또한 염분이 높은 식단을 유지하는 경우 체내 수분 보유량이 늘어나 체중계 숫자가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데, 환자들은 이를 체지방 증가로 오인하고 심리적 좌절감을 느낀다. “물만 마셔도 찐다”는 말은 본인의 대사 상태가 그만큼 비정상적이라는 SOS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Q. 기초대사량을 다시 높이는 것이 고도비만 해결의 정답인가?
그렇다. 하지만 기초대사량은 단기간에 높아지지 않는다. 무작정 굶으면 몸은 오히려 에너지를 더 아끼려고 한다. 기초대사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근육량을 늘리는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엔진의 크기를 키워야 같은 거리를 가도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식사량을 줄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결국 요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Q. 고도비만 환자들이 가장 먼저 교정해야 할 생활 습관은 무엇인가?
식사 일기를 아주 정밀하게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본인이 무의식중에 먹는 간식이나 음료의 칼로리를 객관적으로 직면해야 한다. 또한 수면의 질을 높여야 한다. 잠이 부족하면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이 줄어들고 배고픔을 느끼는 그렐린이 늘어나 다음 날 과식할 확률이 높아진다. 다이어트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인 시스템 관리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