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초진 처방 안전기준 강화 및 환자 안전성 확보 대책 마련해야
29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제49차 정례브리핑에서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 비대면진료(원격 진료) 초진 단계에서 항생제(세균 감염 치료제), 스테로이드제(강력한 염증 억제제), 면역억제제(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약물), 사후피임약(성관계 후 복용하는 응급 피임약) 및 고혈압(혈압이 높은 증상)과 당뇨병(혈당 조절 이상) 등 만성질환 치료제의 처방을 전면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재차 밝혔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비대면진료 확대 방안과 관련하여 의료 전문가들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투약 행위가 대면 진찰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의협은 정부가 비대면진료 초진 시 처방이 제한되는 약제의 범위를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며, 환자가 필요한 경우 즉시 대면 진료를 받거나 적절한 후속 관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대면진료는 화상 통화나 음성 전화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특성상 의사가 환자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거나 청진기로 소리를 듣는 등 정밀한 신체 검진을 수행하기 어렵다. 또한 혈액 검사나 영상 검사 등 객관적인 수치를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환자의 주관적인 설명에만 의존하여 진단이 내려지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의협은 비대면 환경에서의 처방은 단기간의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필수적인 경우에만 한정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대면 진료와 후속 관리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환자의 편의성이나 처방의 용이함만을 앞세워 약물의 허용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의 비대면 초진 처방이 위험할까?
의협에 따르면 항생제는 충분한 대면 진찰과 검사 과정 없이 처방될 경우, 정작 치료가 필요한 질환을 놓치거나 불필요한 남용으로 인해 항생제 내성이 발생할 위험이 큰 약물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 시기를 늦추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스테로이드제(염증 완화제)의 경우 감염 증상을 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체의 면역 반응을 억누름으로써 감염 자체를 악화시키거나 초기 징후를 가리는 위험이 있다. 또한 스테로이드는 혈당과 혈압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등 전신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대면 진찰을 통한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라고 의협은 강조했. 피부에 바르는 국소 도포제 역시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사용 지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면역억제제의 경우에는 성분에 따라 감염 위험을 높이거나 혈구 감소증(혈액 내 세포 수가 줄어드는 증상) 등의 치명적인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약물들은 처방 전후에 혈액 검사와 같은 정밀한 추적 관찰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비대면 초진으로 처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사후피임약과 같이 투여 시점이 치료 효과와 안전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약제 역시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격으로 처방될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오남용의 우려가 크다. 의협은 이러한 약제별 특성을 무시한 채 편의성만을 강조하는 정책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고혈압과 당뇨 환자에게 대면 진찰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관리 중인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들에게도 대면 진료는 생명선과도 같다. 의협은 환자의 현재 상태와 기존 치료에 대한 신체 반응을 평가하지 않고 과거의 처방 내역만을 반복하여 약을 지급할 경우, 환자의 상태 변화에 맞춘 적절한 치료 조정이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만성질환은 단순히 약을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혈압과 혈당의 변화 추이를 직접 확인하며 합병증 여부를 살피는 지속적인 관리가 핵심이다. 비대면 진료가 이러한 관리 과정을 대체하게 되면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약만 복용하며 안심하게 되는 ‘관리의 공백’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의협은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의 연속성을 지원하는 보조적인 수단이지, 결코 대면진료 자체를 대신하는 주된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환자의 질환을 왜곡 없이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차례 이상의 대면 진료를 통해 현재의 건강 상태와 기존 치료의 적정성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후속 진료로서 비대면 방식이 검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환자의 치료를 제한하거나 불편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와 의료적인 안전성을 바탕으로 지속적이고 안전한 치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어떤 부분이 환자 안전을 위협할까?
한편, 정부가 입법예고 중인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초진 환자에게도 30일분의 장기 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의협은 이러한 안전 원칙을 약화시키는 독소 조항이 삭제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대면 진찰 없이 30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의 약물을 한 번에 처방하는 것은 환자가 자신의 부작용이나 이상 증세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대응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 언급된 고위험 약물들이 장기간 처방될 경우, 의료진의 통제를 벗어난 약물 오남용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의협은 현재 입법예고 중인 내용이 초진 범위와 장기 처방의 예외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환자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 측은 정부가 의료 현장의 이러한 우려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시행규칙 개정안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요청했다. 환자의 편의성 증진이라는 명분이 의료의 본질인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제시하는 비대면 진료의 4대 원칙은 무엇일까?
의협은 안전한 비대면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해 네 가지 핵심 원칙이 하위 법령에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는 ‘대면 진료의 원칙’으로, 모든 진료의 시작은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마주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는 ‘재진 환자 중심’의 운영이다. 이미 대면을 통해 진단이 내려진 상태에서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게만 비대면 방식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는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며, 넷째는 비대면 진료만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전담 기관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4대 원칙은 비대면 진료가 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환자들에게 보조적인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의협 측은 이 원칙들이 무너질 경우 의료 시스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환자들은 적절한 시기에 대면 진료를 받지 못해 더 큰 건강상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야만 국민들이 안심하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성급한 제도 확대를 멈추고, 충분한 논의와 검증을 거친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을 거듭 건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