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복용 정보가 생사 가른다… 수술 후 치명적 혈전의 위험 때문에 피임약 복용 금기
현대 의학에서 수술은 질병 치료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보편적인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또한, 경구 피임약은 전 세계 수많은 여성이 사용하는 가장 대중적인 피임 방법 중 하나이다. 이 두 가지, 즉 ‘수술’과 ‘피임약’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이 둘이 만났을 때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전문의들은 “수술 후 혈전의 위험 때문에 피임약은 복용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이는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닌, 생명과 직결된 중대한 의학적 지침이다.
우리가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이 경고 뒤에는 ‘정맥혈전색전증(VTE)’이라는 무서운 질환이 숨어있다. 수술이라는 특수한 신체 상황과 피임약의 호르몬 성분이 결합하여 혈액의 응고 경향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이중 위험’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약물이 수술대 위에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본지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반드시 인지해야 할 피임약 복용의 위험성과 그 의학적 배경을 심층 취재한다.

수술과 피임약, ‘혈전’ 위험을 곱절로 높이는 이유
수술 후 혈전 위험이 높아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수술 자체가 신체 조직에 의도적인 손상을 가하는 행위이다. 우리 몸은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기 위해 혈액 응고 시스템을 즉각 가동시키며, 이 과정에서 혈전(피딱지)이 생성될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더 큰 문제는 수술 후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동(不動)’ 상태이다. 특히 정형외과 수술이나 복부의 큰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일, 혹은 수 주간 침상에 누워있어야 한다. 다리 근육이 움직이지 않으면 정맥의 혈액 순환이 급격히 저하된다. 고인 물이 썩듯, 정체된 혈액은 끈적해지고 서로 엉겨 붙어 심부정맥혈전증(DVT), 즉 깊은 정맥에 피떡을 형성하기 쉽다.
여기에 경구 피임약, 특히 에스트로겐 성분이 포함된 복합 피임약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피임약에 포함된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은 간에서 혈액 응고 인자들의 생성을 촉진하는 부작용을 본질적으로 안고 있다. 평상시 건강한 여성에게는 이 위험이 미미할 수 있으나, 이미 수술과 부동 상태로 ‘과응고 상태’에 돌입한 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즉, 수술로 인한 혈류 정체와 피임약으로 인한 혈액 성분 변화가 시너지를 일으켜, 혈전 생성 위험을 단순히 합산하는 것이 아닌 곱절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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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폐색전증’
수술 후 피임약 복용으로 인해 생성된 혈전이 그저 다리 통증이나 부기 정도로 그친다면, 의학계가 이토록 강력하게 경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 혈전이 이동할 때 발생한다. 다리나 골반의 깊은 정맥에 생성된 혈전 덩어리(DVT)가 혈관벽에서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동을 시작한 혈전은 심장을 거쳐 폐동맥으로 향한다. 폐동맥은 폐로 가는 혈액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만약 혈전이 이 폐동맥의 주요 혈관을 틀어막게 되면, 이는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이라는 초응급 상황을 유발한다.
폐색전증은 폐의 가스 교환 기능을 마비시켜 환자를 급격한 호흡 곤란과 흉통, 심할 경우 심정지 상태로 몰아넣는다. ‘수술 후 환자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사례 중 상당수가 바로 이 폐색전증과 연관되어 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환자가 복용하던 피임약 정보를 의료진에게 알리지 않은 사소한 부주의가 결국 폐색전증이라는 최악의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술 후 혈전의 위험”이라는 경고는 바로 이 폐색전증의 위험을 정조준하는 것이다.

“설마 알겠지”… 진료실의 ‘치명적인 정보 공백’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의 ‘정보 공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피임약을 질병 치료약이 아닌, 일상적인 보조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수술 전 문진 과정에서 “현재 복용 중인 약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고혈압약이나 당뇨병약 등은 상세히 밝히지만 피임약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누락하기 일쑤다.
‘설마 의사가 알아서 판단하겠지’ 혹은 ‘이게 수술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이 위험을 키운다. 일부 환자들은 피임 목적을 밝히는 것을 껄끄럽게 여겨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기기도 한다.
의료진의 바쁜 진료 환경도 문제의 한 축이다. 외과 의사나 정형외과 의사는 환자의 산부인과 관련 약물 이력까지 세세하게 챙기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피임약뿐만 아니라 비슷한 호르몬 성분을 포함한 피부 트러블 치료제, 생리 주기 조절약 등 다양한 약물이 사용되고 있어, 환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의료진이 모든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 이처럼 환자가 말하지 않고 의사가 묻지 않는 ‘정보의 공백’ 속에서, 혈전의 위험은 조용히 싹트게 된다.
수술 결정 시 ‘최소 4주 전’ 중단이 원칙
그렇다면 이 위험한 고리를 끊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명확하다. 수술이 예정된 환자는 복용 중인 피임약을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큰 수술이나 장기간의 부동이 예상되는 수술의 경우, 최소 4주 전에는 경구 피임약 복용을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피임약의 호르몬 성분이 체내에서 완전히 배출되고, 비정상적으로 항진되었던 혈액 응고 시스템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만약 교통사고나 급성 질환으로 응급 수술을 받게 되어 사전에 약을 끊을 시간이 없었다면, 환자나 보호자는 즉시 의료진에게 피임약 복용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 경우 의료진은 혈전 예방을 위해 항응고제(혈액 희석 주사)를 예방적으로 투여하거나, 압박 스타킹 착용, 조기 보행 독려 등 훨씬 더 강력한 혈전 예방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결국 핵심은 ‘소통’이다.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와 복용 약물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의료진은 환자가 편안하게 모든 정보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문진 환경을 조성하고 호르몬제 복용 여부를 교차 확인할 책임이 있다. “수술 후 혈전의 위험 때문에 피임약은 복용하면 안 된다”는 단 하나의 문장은, 수술실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약속인 것이다.
민병원 외과 김혁문 진료원장은 “수술 전 환자 문진은 안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특히 경구 피임약은 그 성분이 혈액 응고 기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과 의사에게는 수술의 위험도를 판단하는 핵심 정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이어 “환자가 ‘사소하다’고 판단하여 숨긴 정보 하나가 수술 중이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폐색전증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피임약뿐만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 모든 복용 약물은 의료진에게 100%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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