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 별 전문 낭독, 목동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제가 뤼베롱산에서 양을 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몇 주씩이나 사람 기척 하나 느끼지 못한 채, 오로지 양 떼와 사냥개 라브리만을 길동무 삼아 너른 목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끔 약초를 캐러 산을 오르는 은둔자나, 피에몽에서 온 숯쟁이들의 거무스름한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지요. 하지만 고독에 길들여진 그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화제로 삼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우리 농장의 노새 방울 소리가 언덕 너머에서 들려올 때면, 제 가슴은 한없이 설레곤 했습니다. 보름치 식량을 실어 나르는 노새를 몰고 꼬마 머슴인 미아로나 노라드 아주머니가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 저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밑바닥 마을에서 일어난 세례식이나 결혼 소식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연신 캐묻곤 했지요. 하지만 제 마음이 온통 향해 있던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주인댁의 따님, 이 근처 백 리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소식이었지요.
저는 너무 유난을 떨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아가씨가 요즘도 마을 잔치에 자주 가는지, 밤마다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려 찾아오는 멋쟁이들이 여전히 많은지를 슬쩍 떠보곤 했습니다. 혹시라도 “보잘것없는 목동인 네가 그런 건 알아서 무얼 하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저는 그저 이렇게 대답할 뿐입니다. 그때 제 나이는 스무 살이었고, 제 평생 본 사람 중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웠노라고 말입니다.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식량 보급이 평소보다 유독 늦어지고 있었지요.
아침에는 ‘마을 미사가 길어지나 보다’ 생각했고, 정오쯤 소나기가 퍼부었을 때는 ‘길이 험해 노새가 발이 묶였겠구나’ 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오후 세 시가 지나자, 소나기에 씻긴 하늘이 투명하게 열리고 온 산이 젖은 채로 햇살 아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불어난 개울물 소리 사이로, 반가운 방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활절 종소리처럼 경쾌하고 맑은 울림이었지요.
그런데 노새를 몰고 나타난 이는 미아로도,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아가씨였습니다. 아가씨는 노새 등 위 바구니 사이에 의젓하게 앉아 직접 산을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맑은 산 공기와 소나기 끝의 서늘함 때문인지 아가씨의 두 볼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꼬마는 앓아누웠고 아주머니는 휴가를 떠나 대신 오게 되었다며, 길을 잃어 늦었다고 말하는 아가씨의 모습은 정말이지 눈이 부셨습니다. 머리에 꽂은 꽃 리본과 화려한 스커트, 빛나는 레이스로 장식된 옷차림을 보니, 덤불 속을 헤맸다기보다는 마치 무도회에서 즐겁게 놀다 온 요정 같았습니다. 제 눈은 아가씨에게서 도무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가까이서 아가씨를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아가씨는 바구니에서 식량을 꺼내놓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제 거처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들이옷이 더러워질까 봐 치맛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고는, 양 우리며 제가 잠을 자는 짚자리, 벽에 걸린 낡은 외투와 지팡이를 신기한 듯 구경했지요.
“그래, 여기서 혼자 지내는 거야? 가엾은 목동 같으니. 늘 혼자 있으면 얼마나 심심할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니?”
‘당신 생각을 합니다, 아가씨.’
그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저는 너무 당황해서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습니다. 아가씨는 제 수줍음을 알아채고는 짓궂게 웃으며 저를 놀렸지요. “네 여자친구라도 가끔 올라오니? 혹시 산봉우리에 산다는 요정 에스테렐이라도 만나러 오는 거야?”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젖히고 웃는 아가씨의 모습은, 제 눈엔 영락없는 에스테렐 선녀 같았습니다. 아가씨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다시 언덕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노새의 발굽에 치여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가 내 심장 위에 하나씩 떨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 꿈 같은 순간이 깨질까 봐 해가 질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녁 무렵, 골짜기에 푸른 어둠이 깔릴 때쯤
다시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타난 아가씨는 아까의 생기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물에 젖어 추위와 겁에 질린 채 떨고 있었습니다. 소나기에 불어난 강물을 건너려다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지요. 날은 이미 저물었고 아가씨 혼자서는 지름길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양 떼를 두고 아가씨를 데려다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아가씨는 산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아가씨를 안심시켰습니다.
“7월의 밤은 아주 짧답니다, 아가씨. 잠깐만 견디시면 곧 아침이 올 거예요.”
저는 서둘러 불을 피워 아가씨의 젖은 옷을 말리게 하고, 우유와 치즈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먹지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글썽일 뿐이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서쪽 하늘에 가느다란 노을빛만 남았을 때, 저는 아가씨를 위해 깨끗한 새 짚과 양가죽을 우리 안에 깔아 드렸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앉았습니다.
비록 누추한 양 우리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귀한 양 한 마리가 내 보호 아래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날 밤의 하늘은 유난히도 깊고, 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반짝였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아가씨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양들의 뒤척이는 소리와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아가씨는 모닥불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제 양가죽 외투를 아가씨의 어깨에 둘러 드리고 불을 더 지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고요한 밤의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밤이 되면 세상은 낮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모습으로 깨어납니다. 샘물은 더 맑게 노래하고, 대기 속에서는 만물이 숨 쉬는 듯한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오지요. 이런 밤의 적막이 낯선 아가씨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며 제 곁으로 다가앉았습니다. 그때, 아름다운 유성 하나가 우리 머리 위를 길게 가로질러 지나갔습니다.
“저게 무얼까?” 아가씨가 나지막이 물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입니다, 아가씨.”
저는 성호를 그었고 아가씨도 저를 따라 성호를 그었습니다. 아가씨는 한참 동안 별을 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습니다. “목동아, 너희는 정말 별들의 이름을 다 아니?”
“그럼요, 아가씨. 보세요, 머리 위로 흐르는 저 ‘성 자크의 길(은하수)’은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이어져 있지요. 저기 바퀴 네 개가 빛나는 ‘영혼들의 수레(북두칠성)’도 보이고요, 가장 낮게 빛나는 별들의 횃불 ‘장 드 밀랑(시리우스)’도 있답니다. 별들도 우리처럼 잔치에 가고 사랑을 한답니다.”
“어머나, 별들도 결혼을 하니?” “그럼요, 아가씨.”
제가 별들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가씨의 무거운 머리가 제 어깨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습니다. 리본과 레이스, 그리고 향기로운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사각거리며 제 어깨를 눌렀습니다. 아가씨는 동이 터오고 별들이 빛을 잃을 때까지 그렇게 가만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잠든 아가씨의 얼굴을 지켜보며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가슴은 세차게 뛰었지만, 마음만은 성스럽고 평온했습니다. 오직 아름다운 생각만을 품게 해 주는 저 맑은 밤하늘이 저를 지켜주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별들이 거대한 양 떼처럼 고요하게 그들만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수많은 별 중 가장 가냘프고 눈부신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고이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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