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종파와 이슬람 문지기가 지켜온 ‘스타투스쿠오’의 역설: 예루살렘 성묘교회의 불편한 평화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4시, 수많은 순례자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기다리는 곳은 기독교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인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의 거대한 문 앞이다. 이곳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혔다가 부활한 장소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거룩한 교회의 빗장을 여는 이는 정교회 사제도, 가톨릭 신부도 아니다. 바로 이슬람 가문의 후손이다. 이 역설적인 장면이야말로 성묘교회를 지배하는 ‘스타투스쿠오(Status Quo, 현상 유지)’라는 독특한 질서의 본질을 보여준다. 성묘교회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170년 넘게 지속된 종교 간의 갈등과 합의, 그리고 불편한 평화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스타투스쿠오의 탄생: 1853년 오스만 제국의 칙령
성묘교회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기독교 종파들의 격렬한 소유권 다툼의 중심지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 갈등은 극에 달했고, 작은 다툼 하나가 국제적인 외교 문제로 비화될 정도였다. 결국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던 오스만 제국은 1853년, 성묘교회를 포함한 주요 성지들의 영역과 권한을 영구적으로 동결하는 ‘현상 유지 칙령’을 반포했다. 이 칙령이 바로 성묘교회의 ‘스타투스쿠오’다.
이 현상 유지는 로마 가톨릭(프란치스코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총 여섯 개 종파의 권한과 예배 구역, 심지어 청소 구역까지도 1853년 당시의 상태 그대로 유지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평화로운 공존이라기보다는, 작은 변화조차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지된 상태’를 제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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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종파의 불편한 동거와 ‘움직일 수 없는 사다리’
스타투스쿠오의 엄격함은 성묘교회 내부의 일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각 종파는 자신의 영역을 철저히 지키며 다른 종파가 조금이라도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소 구역을 두고 종파 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일은 이미 수차례 뉴스에 보도됐다. 심지어 교회 정면 2층 창문 아래에 놓인 낡은 나무 사다리 하나도 스타투스쿠오의 상징이 됐다.
이 사다리는 수백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어느 종파도 그것을 옮기거나 치울 권한이 없다. 사다리를 옮기는 행위 자체가 현상 유지를 깨뜨리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움직일 수 없는 사다리’는 성묘교회 내에서 단 하나의 못을 박거나, 촛대를 옮기는 사소한 행위조차도 6개 종파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완벽한 평화가 아닌, 파국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170년 넘게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슬람 가문의 중재 역할: 기독교 성지의 문지기
성묘교회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교회의 열쇠를 이슬람 가문이 관리하고, 매일 아침 문을 여는 역할을 대대로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 전통은 12세기 살라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살라딘은 기독교 종파 간의 분쟁이 심화되자, 중립적인 제3자인 이슬람 가문에 열쇠 관리를 맡겼다.
현재까지도 예루살렘의 누세이베 가문과 주데이 가문이 이 역할을 대대로 이어오고 있다. 이슬람교도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의 문을 여는 것은 종파 간의 갈등을 외부의 권위로 통제하려는 역사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들은 단순한 문지기가 아니라, 6개 종파가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스타투스쿠오를 유지하는 핵심 축이 됐다. 이들의 존재는 성묘교회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닌, 예루살렘의 정치적, 역사적 복잡성을 상징하는 공간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복장 규제와 문화적 존중: 성묘교회 ‘스타투스쿠오’의 역설
성묘교회를 방문하는 순례자와 관광객에게는 엄격한 복장 규정이 요구된다. 특히 반바지나 민소매 등 노출이 심한 복장은 입장이 금지된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예의를 넘어선다. 이 복장 규제는 6개 종파가 합의하고 지켜나가는 신성한 공간의 경계를 존중하라는 무언의 명령이다. 스타투스쿠오는 건물 내부의 물리적 질서뿐 아니라, 외부 방문객의 태도와 복장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현상 유지 체계인 셈이다.
방문객이 복장 규정을 어기거나, 내부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는 6개 종파 간의 미묘한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요소로 간주된다. 따라서 성묘교회에서의 복장 에티켓은 단순한 문화적 존중을 넘어, 170년 동안 지속된 이 복잡한 현상 유지 질서에 동참하고 이를 존중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성묘교회는 인류의 구원을 상징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인간적 갈등이 제도적으로 봉합된 곳이다. 이곳의 스타투스쿠오는 완벽한 평화가 아니라, 파국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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