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당시 요양급여 미신청 진폐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
📢 핵심 3줄 요약
1. 대법원은 폐광 당시 요양급여를 받지 않았어도 사후에 진폐 장해 판정을 받은 근로자의 재해위로금 청구권을 인정했다.
2. 진폐증의 불치성과 진행성이라는 의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일반 질병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3. 이번 판결로 폐광 이후 합병증이 발생하거나 상태가 악화된 진폐 근로자들의 보상 범위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따라 확대됐다.
지난 2026년 9월 2일, 대법원 제3부는 진폐증(폐에 먼지가 쌓여 발생하는 질환) 근로자들이 한국광해광업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재해위로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폐광 시점에 요양급여(치료비 지원)를 신청하거나 받지 않았더라도, 이후 진폐증 증상이 악화되어 장해 등급을 받았다면 재해위로금 지급 대상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사건의 발단은 수십 년 전 광업소에서 근무했던 광부들의 건강 상태 악화였다. A씨(원고 1)는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제1광업소에서, B씨(원고 2)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제2광업소에서 광원으로 근무했다. 이들이 근무하던 광업소는 각각 2005년과 2001년에 폐광했다. A씨는 2000년에 진폐병형 제1형 진단을 받았고, 폐광 이후인 2007년부터 합병증인 활동성 폐결핵으로 요양하다가 2020년에 진폐장해 11급 판정을 받았다. B씨 역시 폐광 이후인 2004년부터 2012년 사이 진폐장해 등급이 점차 상향되어 최종적으로 7급 판정을 받았다.

폐광 당시 요양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할 수 있을까?
한국광해광업공단은 구 석탄산업법 시행령 제41조 제4항 제5호를 근거로 위로금 지급을 거부했다. 해당 조항은 재해위로금 지급 대상을 ‘업무상 재해를 입고 폐광일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요양급여를 받고 있거나 신청한 자로서 장해등급이 확정되지 아니한 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단 측은 원고들이 폐광 당시 요양급여를 받고 있지 않았으므로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이러한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원심은 진폐증의 경우에도 해당 조항의 문언적 요건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폐광일 당시에 요양급여를 신청했거나 수령 중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재해위로금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각은 달랐다. 대법원은 진폐증이라는 질병이 가진 독특한 의학적 성격에 주목했다.
진폐증의 진행성과 불치성을 고려한 법적 해석은 무엇인가?
대법원은 진폐증이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불가능하며, 분진이 발생하는 작업장을 떠난 후에도 증상이 계속 진행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 질병의 환자는 요양급여를 받지 않고도 장해급여를 받는 경우가 빈번하며, 이는 다른 일반적인 부상이나 질병과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대법원은 진폐증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장해등급 기준에 해당하게 된 때에는 완치 여부와 상관없이 곧바로 장해급여를 지급하도록 한 규정의 취지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폐광일 전에 발생한 진폐증이 폐광 당시 합병증으로 발현되어 요양 대상이 될지, 아니면 폐광 후에 악화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우연한 사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폐광 전 진폐증이라는 업무상 질병을 얻은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합병증 발현 시점이 폐광 이후라는 이유로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시했다. 이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이번 판결의 사회적 의미
신영태 자연주의의원 원장은 ‘산업 역군으로 헌신한 광부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며 ‘법리적 해석이 근로자의 실질적 고통과 질병의 특수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해 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신 원장은 이어 ‘이번 판결이 소외된 산업 현장 근로자들에게 실질적인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진환 법무법인 지금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진폐증의 의학적 진행성을 법적으로 수용한 중요한 이정표’라며 ‘요양급여 신청 여부라는 형식적 요건에 매몰되지 않고 재해위로금의 입법 취지인 사회보장적 성격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향후 유사한 처지에 놓인 많은 폐광 근로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덧붙였했다.
이번 판결이 향후 폐광 대책비 지급 관행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한국광해광업공단의 재해위로금 지급 심사 기준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존에는 폐광 시점의 요양 여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으나, 앞으로는 진폐증의 발병 시점과 폐광 이후의 악화 경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2010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진폐근로자에게 요양 여부와 관계없이 진폐보상연금을 지급하도록 한 취지가 재해위로금 산정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원심이 진폐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의 파기 환송 취지에 맞춰 원고들의 재해위로금 청구권을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는 수십 년간 진폐증으로 고통받아온 근로자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의 길이 열렸음을 의미하며, 향후 석탄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직업병 환자들에 대한 국가적 보호 의무를 재확인한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