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실 뺑뺑이 처벌, 병원의 책임과 의료 시스템 개선 사이, 균형이 필요하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대구에서 발생한 17세 여성 응급환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환자 수용을 거부한 A대학병원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중단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병원이 응급의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며, 응급 의료를 거부·기피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판결은 응급환자 보호를 위한 의료기관의 책임을 강조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단순히 병원에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이번 판결이 오히려 필수 의료 시스템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는 않을까?
응급실 뺑뺑이 사태, 단순한 진료 거부의 문제인가?
응급실 뺑뺑이는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는 이를 병원의 진료 거부 문제로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응급실의 수용 불가와 배후 진료의 부재가 주요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에서도 A대학병원은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환자의 치료를 맡을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 기초적인 처치를 하더라도 이후 중증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를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를 단순한 진료 거부로 판단하여 병원에 책임을 물었다.

법적 쟁점
정부는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 강화 조치가 의료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논란이 있다. 주요 법적 쟁점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 응급의료법 제6조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의 해석이 모호하여, 병상이 부족하거나 의료진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도 거부 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실제로 의료기관이 과밀 상태에서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처벌할 경우, 의료진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둘째, 응급환자 수용 거부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의료기관의 방어진료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의료진이 법적 처벌을 우려하여 응급환자를 무리하게 수용할 경우, 오히려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또한, 의료기관이 응급환자 수용을 기피하기 위해 특정 환자를 비응급으로 분류하는 등의 회피 전략을 취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셋째, 의료기관의 수용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처벌이 정당한가의 문제가 있다. 응급실의 수용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용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병원의 운영과 의료진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의료진 부족과 배후 진료 시스템의 한계
응급실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초기 진료 뿐만 아니라 이후 치료를 담당할 배후 진료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서는 필수 의료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고, 특히 지방 병원에서는 중증 환자를 맡을 수 있는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중증 환자를 담당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거나 병상이 부족해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 법적 판단은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의료진에게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응급실 기능과 필수 의료 붕괴의 위험
이번 판결이 미칠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는 의료진의 위축이다. 만약 의료진이 응급환자를 수용했다가 이후 치료할 방법이 없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경우, 법적 책임까지 떠안게 된다면 응급실 자체가 점점 기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응급의료법 제10조는 “응급의료종사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를 중단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과 이번 판결이 맞물려 작용한다면 응급의료기관 입장에서 응급의료법 제10조는 독소조항 그 이상의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병원들에 대한 압박을 증가시켜, 향후 응급실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법적 판단의 균형과 의료 현실의 괴리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법’과 ‘의료법’에 기초해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명확히 하였다. 응급 의료 자원이 충분하지 않거나 적절한 진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진료 거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이러한 법적 기준과 충돌하며, 현실적인 의료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한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을 보이고 있다.

응급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해법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 전반을 개선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병원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해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후 진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정비하고, 응급환자 분류 및 배치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적인 병상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의료진 보호 장치를 마련해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이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 기준을 유연화하여, 규모가 작더라도 배후 진료과가 잘 갖추어진 2차 병원도 지정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응급의료센터가 아니더라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병원으로 우선 이송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응급환자의 신속한 치료를 가능하게 하고,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단순한 처벌 강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의료진과 병원이 적절한 환경에서 진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응급의료 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 기준 개선, 의료 인력 확충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병원에 대한 처벌이 아닌, 의료 시스템 강화가 근본적인 해법임을 잊지 않기를…. 정부가 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여 국민이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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