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사설] 응급실 진료 거부와 응급실 뺑뺑이는 다르다.
응급실 진료 거부와 응급실 수용 불가는 구분해야
2023년 10월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의료 공백 사태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의료공백의 대표적인 예로 속칭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으며, 언론사마다 여기저기서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다. 참고로 응급실 뺑뺑이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현 우리나라 의료상황과 의료시스템을 기초로 볼 때 사실 응급실 뺑뺑이는 응급실 진료 거부 보다는 오히려 응급실 수용 불가가 그 원인일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언론은 이러한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을 응급실 진료거부에 있는 것처럼 보도 한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응급실에서 진료 거부를 하고 있는 의사들이 미울 수 밖에 없고, 신뢰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때문에 응급실 뺑뺑이라는 사태를 논함에 있어서도 응급실 진료 거부와 응급실 수용 불가는 반드시 구분되어 사용될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접근해야 각각의 문제에 대한 적합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응급실 진료 거부에 대해 살펴보자. 응급실 진료 거부는 말 그대로 환자가 응급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진료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정말 의사가 진료하기 싫어 환자를 받지 않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응급실에 수용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환자를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반면, 응급실 수용 불가는 응급실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초과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응급실 배드가 모두 소진되어 밀려드는 환자를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요즘 처럼 배후진료과에 의료진이 없어 특정 질환이나 증상에 대한 배후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응급실 진료 거부와 응급실 수용 거부,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다른 원인과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응급실 진료 거부 문제는 의료진의 근무 환경과 직무 만족도, 그리고 의료 인력의 양적 증대와 관련이 깊다. 또한 극히 일부이지만 의료진의 인성문제 개선과도 연관될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의료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의료진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지 않도록 의료진의 직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적절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응급실 수용 불가는 비단 응급실 인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병원의 병상이 부족하거나, 배후 진료과 전문의의 수가 적어 적시의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때문에 의료 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병원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응급 의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응급 환자의 적정 분류와 신속한 전원 체계를 마련하여, 응급실의 과부하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 의료 기관 간의 협력을 강화하여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이 두 가지 용어가 서로 혼재 되서 사용되다 보니, 의사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의 주범으로 오인되고 있고,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더욱 멀어지고 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 한마디에 첫냥 빚 갚는다” 말을 주제로 한 속담은 참 많다. 이 모든 속담들이 말의 올바른 사용을 직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응급실 뺑뺑이 문제, 의료공백 사태 이 모두가 잘못 사용된 말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