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을수록 좋은 줄 알았던 콜레스테롤, 노년기 저콜레스테롤이 초래하는 뇌 세포 위기
과거부터 비만은 만병의 근원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고콜레스테롤 혈증은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핵심 지표로 관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고령층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상식이 뒤집히는 이른바 ‘비만 역설(Obesity Paradox)’ 현상이 주목을 받는다. 이는 특정 연령대 이후부터는 오히려 약간의 과체중과 적정 수준 이상의 수치가 사망률을 낮추고 뇌 기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가설에 기반한다.

노년기 저콜레스테롤이 초래하는 뇌 세포의 위기
콜레스테롤은 흔히 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악역으로 묘사되지만, 뇌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의 뇌는 전체 체중의 약 2%에 불과함에도 신체 전체 콜레스테롤의 약 25%가 집중된 기관이다. 뇌세포의 세포막을 구성하는 핵심 성분이자 신경전달물질의 이동을 돕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2019.04.10. 학술지 Neurology에 게재된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공중보건대학 미셸 밀케(Michelle M. Mielke) 교수팀의 연구 [Total cholesterol and cognitive decline: The Honolulu-Asia Aging Study]에 따르면, 고령층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뇌 신경세포의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지고 신경 연결망의 효율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결국 인지 능력 하락과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서울 민병원 김경래 내과 대표원장(내분비 내과 전문의)은 “노년기의 낮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단순한 지표의 하락이 아니라 전신적인 영양 불균형과 세포막의 기능 저하를 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콜레스테롤은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시냅스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고령자에게서 수치가 너무 낮으면 뇌의 퇴행성 변화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고령화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의학적 딜레마로 부상하고 있다.
학계 연구를 통해 본 비만 역설의 실체와 통계
비만 역설의 근거는 여러 장기적인 추적 조사 결과를 통해 뒷받침된다. 2023.11.21. Neurology에 발표된 호주 모나쉬 대학교 공중보건 및 예방의학 대학원 주리 안(Zhou-ri An) 박사팀의 연구 [Low-Density Lipoprotein Cholesterol and Risk of Dementia in Older Adults]에 따르면, 70세 이상의 고령층에서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낮은 집단이 적정 수치를 유지한 집단에 비해 치매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연구팀은 콜레스테롤이 뇌에서 베타-아밀로이드 침착을 억제하거나 신경 보호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에 주목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된다. 2019.05.22. 세계적 권위의 의학 학술지 The BMJ에 발표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김기웅 교수팀의 연구 [Association of body mass index with risk of dementia: a 10-year follow-up study]에서는 한국 노인들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저체중 그룹의 치매 발생률이 비만 그룹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는 체질량지수(BMI)와 혈중 지질 농도가 인지 건강을 지탱하는 일종의 ‘에너지 비축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단순히 살을 빼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한 것.

개별화된 건강 관리 전략의 필요성 대두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고령 환자를 대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젊은 층에게는 엄격한 식이요법과 강도 높은 운동이 권장되지만, 노년층에게는 오히려 충분한 단백질 섭취와 적절한 체중 유지가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인지 기능 저하가 우려되는 고위험군 노인들에게 무분별한 고지혈증 약물 복용이나 극단적인 저지방 식단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신체적 노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리적 변화를 이해하고, 수치 중심이 아닌 기능 중심의 의료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 민병원 김성수 내분비내과 원장은 “노인의 경우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치매 전조 증상 중 하나인 영양 흡수 능력 저하나 대사 효율 감소를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인지 건강의 보조 지표로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수치가 낮은 환자들에게는 뇌 인지 예비능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영양 공급과 생활 습관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비만 역설이 단순히 ‘살이 쪄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령기 생존 전략으로서의 적정 영양 상태를 강조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현대 의학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와 사회적 인식 변화
비만 역설과 콜레스테롤의 치매 보호 효과는 연령별, 개인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진료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사회적으로 ‘날씬한 몸매’와 ‘낮은 콜레스테롤’이 절대적인 선으로 추앙받는 분위기 속에서, 고령층의 건강 기준은 다르게 설정돼야 한다.
무리한 체중 감량보다는 근육량을 유지하고, 뇌 세포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지질 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치매 예방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건강 정책 역시 이러한 생애 주기별 특성을 반영하여 보다 유연하고 입체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서울 민병원 김경래 내과 대표 원장에게 듣는 고령층 콜레스테롤 관리 궁금증
Q. 나이가 들수록 콜레스테롤이 높아야 좋다는 뜻인가?
무조건 높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젊은 층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기준치를 고령층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영양 결핍이나 뇌 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크지 않은 고령자라면 약간 높은 수준이 오히려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노쇠를 막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Q. 비만 역설이 비만을 방치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비만 역설에서 말하는 비만은 고도비만이 아니라 체질량지수(BMI)상 과체중이나 경도 비만 수준을 의미한다. 또한 지방만 많은 비만이 아니라 적절한 근육량이 동반된 상태를 뜻한다. 고령층에서도 복부 비만은 여전히 각종 염증과 대사 증후군의 원인이 되므로, 전체적인 체중보다는 체성분 구성과 영양 상태의 균형이 더 중요하다.
Q. 치매 예방을 위해 고지혈증 약 복용을 중단해야 하나?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기에 독단적인 판단은 위험하다. 이미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거나 뇌졸중 과거력이 있다면 약물 치료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고령 환자 중 기저 질환이 없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게 유지된다면, 전문의와 상담하여 약물 용량을 조절하거나 영양 섭취를 강화하는 등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