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인력보다 연금술에 미쳤었다’, 아이작 뉴턴의 연금술 실험 기록과 신체적 이상 징후
아이작 뉴턴은 근대 물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지만, 그의 생애 중 상당 부분은 과학적 방법론과는 거리가 먼 연금술 연구에 할애됐다. 뉴턴이 남긴 1,000만 단어 이상의 수고본 중 약 100만 단어가 연금술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사실은 그가 단순한 취미 이상의 목적으로 이 분야에 집착했음을 보여준다.
17세기 당시 영국에서 연금술은 금을 제조하여 화폐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다. 이에 따라 뉴턴은 자신의 연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도 이 기록들은 오랜 기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이 남긴 100만 단어의 연금술 기록
뉴턴의 연금술 연구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그가 사망한 지 약 200년이 지난 1936년의 일이다. 당시 뉴턴의 후손들은 그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개인 문서를 소더비 경매에 내놓았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 문서들 중 상당수를 낙찰받아 분석한 뒤, 뉴턴을 ‘이성의 시대의 첫 번째 인물이 아니라, 마지막 마법사’라고 칭했다.
2016.04.05.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Cambridge University Library)에서 디지털 아카이브로 공개한 뉴턴의 수고본에 따르면, 그는 금속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비법을 찾기 위해 수십 년간 실험을 지속했다. 뉴턴은 고대 그리스 신화와 성경 구절 속에 연금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해독하기 위해 고대 문헌 연구에도 막대한 시간을 쏟았다.
현자의 돌을 향한 집착과 비밀 실험의 구체적 정황
뉴턴의 실험 노트에는 납과 수은을 이용한 복잡한 화학 반응 과정이 상세히 기록됐다. 그는 특히 ‘디아나의 나무’라고 불리는 은 결정체 성장 실험에 집중했는데, 이는 금속이 생명체처럼 자라날 수 있다는 연금술적 믿음에서 비롯됐다.
2005.02.10. 인디애나 대학교(Indiana University)의 윌리엄 뉴먼 교수가 주도한 ‘뉴턴 프로젝트’의 연구에 따르면, 뉴턴은 조지 스타키와 같은 당대 연금술사들의 저술을 필사하고 자신만의 암호로 실험 결과를 기록했다. 그는 금속의 부식과 결합 과정을 관찰하며 물질의 근원을 파악하려 했다. 이러한 활동은 1687년 발간된 ‘프린키피아’의 집필 기간과도 겹치며, 그가 물리학적 법칙을 정립하는 과정에서도 물질 사이의 인력을 연금술적 관점에서 해석하려 노력했음을 시사한다.

수은 중독과 1693년의 정신적 붕괴 사이의 과학적 상관관계
뉴턴은 실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 가스를 직접 흡입하거나 물질의 맛을 보는 등 위험한 방식을 택했다. 이는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9.08.15.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스피겔만(P.E. Spargo)과 파운즈(C.A. Pounds)의 연구에 따르면, 뉴턴의 유품에서 수습한 모발을 분석한 결과 수은 농도가 일반인의 정상 수치보다 약 15배에서 40배가량 높은 최고 197ppm 수준으로 검출됐다. 수은 중독은 불면증, 불안 증세, 기억력 감퇴, 편집증적 사고를 유발한다.
실제로 뉴턴은 1693년경 극심한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이며 친구들에게 비난 섞인 편지를 보내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 당시 그는 자신의 실험실이 화재로 소실된 후 큰 충격을 받았으나, 과학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심리적 요인이 아닌 장기간에 걸친 중금속 노출의 결과로 분석한다.
과학과 신비주의의 경계에서 탄생한 만유인력의 법칙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연금술은 미신에 가깝지만, 뉴턴에게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또 다른 도구였다. 그는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인 중력을 설명할 때, 연금술에서 강조하는 ‘물질 내부의 활성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14.11.12. 미국 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서 발표된 뉴턴의 실험 재현 보고서에 따르면, 뉴턴은 물질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성질에 의해 상호작용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는 당시 주류였던 기계론적 세계관을 넘어 만유인력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도출하는 데 기여했다. 결국 그의 연금술 연구는 과학적 오류가 아닌, 보편적 물리 법칙을 찾아내기 위한 과도기적 탐구 과정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유물 보존 현황
뉴턴이 남긴 연금술 관련 수고본은 현재 전 세계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보관 중이다. 가장 많은 양을 보유한 곳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이며,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또한 케인스가 기증한 상당수의 문서를 관리하고 있다. 이 문서들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학술적 연구 대상이 됐으며, 이를 통해 뉴턴의 학문적 정체성이 재정립됐다.
해당 기관들은 뉴턴의 모든 수고본을 디지털화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으며, 이는 과학사 연구에서 뉴턴의 입체적인 면모를 확인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뉴턴의 연금술 연구는 그가 사망할 때까지 비밀로 유지됐으나, 오늘날에는 그의 천재성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