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범인 빈센조 페루자의 범행 전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매일 수많은 관람객이 운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 보고다.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그러나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이 신비로운 미소의 주인공이 한때 박물관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이 있었다.
1911년 8월 21일 발생한 이 도난 사건은 예술사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황당한 범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박물관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명화를 훔쳐낸 인물은 베일에 싸인 천재 도둑이 아니라, 박물관 내부 사정에 정통했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정교한 계획 아닌 허술한 보안의 틈새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가장 충격적인 점은 범행이 일어난 뒤 이틀 동안이나 박물관 측이 그림의 실종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는 1911년 8월 23일 자 기사를 통해 박물관 경비대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은 월요일을 정기 휴관일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청소와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범인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휴관일에는 경비가 느슨해지고 많은 작업자가 오간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범인은 대단한 장비를 동원하거나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작업복을 입고 박물관에 들어갔을 뿐이다.
범인의 정체는 이탈리아 출신의 유리공 빈센조 페루자였다. 그는 과거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포함한 주요 명화들의 보호용 유리 케이스를 제작하고 설치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내부 인력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박물관의 구조와 보안 시스템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페루자는 범행 당일 아침, 다른 작업자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박물관 내부로 진입했다. 그는 관람객이 없는 틈을 타 벽면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냈고, 인적이 드문 계단 아래에서 그림의 액자와 유리 케이스를 분리했다. 이후 가로 77cm, 세로 53cm 크기의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을 자신의 옷 속에 숨긴 채 유유히 정문을 걸어 나갔다.
세계를 비웃은 이틀간의 공백과 언론의 질타
범행이 일어난 월요일 이후, 화요일 오전 박물관이 문을 열었을 때도 누구 하나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경비원들은 그저 그림이 박물관 내 사진 촬영실로 옮겨졌거나 보존 처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이동되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수요일이 되어서야 촬영실에도, 보존실에도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루브르 박물관은 발칵 뒤집혔다. 르 피가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물을 이틀 동안 방치한 박물관의 보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의 관장은 사임했고, 프랑스 정부는 국가적인 망신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경찰은 즉각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나 범인의 행방은 묘연했다. 수천 명의 방문객과 직원이 조사 대상에 올랐으며, 심지어 당시 유명 화가였던 파블로 피카소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까지 용의 선상에 올라 심문을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범인인 페루자는 루브르 인근의 자신의 하숙집에 모나리자를 숨겨둔 채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림을 트렁크 밑바닥에 숨겨두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도둑이 바로 코앞에 있었음에도 수사팀은 그를 단순한 작업자로 분류하여 가벼운 알리바이 확인만 하고 지나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밝혀진 세기의 도난극
범행 발생 약 2년 뒤인 1913년 12월,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페루자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예술품 거래상인 알프레도 게리에게 편지를 보내 모나리자를 팔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페루자는 자신의 범행 동기가 돈이 아니라 애국심이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군이 나폴레옹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약탈해 간 예술품을 고국으로 되돌려놓고 싶었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직접 프랑스로 가져가 프랑스 왕실에 정당하게 판매한 작품이었기에 그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약했다.
게리는 페루자를 피렌체의 한 호텔로 유인한 뒤, 우피치 미술관의 관장과 함께 그림의 진품 여부를 확인했다. 육안으로 확인된 그림 뒷면의 루브르 박물관 고유 번호와 다빈치 특유의 붓 터치는 그것이 진품임을 입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페루자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모나리자는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에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사건은 천재적인 범죄자의 치밀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시스템의 맹점을 너무나 잘 알던 내부 직원의 무모한 행동이 빚어낸 결과였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보안의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침입보다 내부의 방심이라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명화의 위상을 바꾼 역설적인 사건의 결과
흥미로운 사실은 이 도난 사건이 모나리자를 현재와 같은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건 이전에도 모나리자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인 지명도를 가진 ‘세계 최고의 그림’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난 사건 이후 전 세계 언론은 매일같이 모나리자의 실종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루었고, 비어 있는 루브르의 벽면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의 관람객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사라진 것’에 대해 이전보다 더 큰 열광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림이 회수된 이후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순회 전시를 마친 뒤 다시 루브르로 돌아왔다. 복귀 당시 모나리자를 맞이한 인파는 국빈급 인사를 환영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 사건을 통해 모나리자는 단순한 예술품을 넘어 인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페루자는 이탈리아 법정에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으며, 일부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는 애국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국가 간의 문화재 갈등과 박물관 보안의 취약성, 그리고 언론이 만들어낸 대중적 인기가 어떻게 예술품의 가치를 재정립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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