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제명하는데 의사는 건의, 유신 시대의 유물인 행정 통제를 넘어 전문가 자율 징계권과 면허 이원화로 나아가야
2018년 5월, 대한민국 의료계와 사법부는 한 인물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S병원 강모 원장에게 대법원이 징역 1년을 확정하기까지, 그는 버젓이 환자의 몸에 칼을 대고 있었다. 비윤리적 행위와 치명적인 과실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부여한 면허라는 견고한 성벽 안에서 그는 법적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렸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사 면허 관리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인 결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동료들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아도 행정부의 처분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이 기이한 구조는 2026년 현재까지도 우리 의료계를 옥죄고 있다.

영국 GMC가 증명한 진료 면허와 의사 등록의 전략적 분리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모델은 영국의 총의학회(GMC)다. 영국은 이미 2009년 11월 16일부터 면허 체계를 철저히 이원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학문적 자격을 증명하는 의사 등록(Registration)과 실제 의료 행위를 허가하는 진료 면허(License to Practise)를 분리한 것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을 갖춘 이는 등록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만, 이것이 곧 환자를 진료할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 진료를 위해서는 별도의 행위 면허를 취득해야 하며, 이는 5년마다 갱신(Revalidation) 과정을 거쳐야만 유지된다. 갱신 과정에서는 동료 의사들의 다면 평가, 환자들의 만족도, 지속적인 보수 교육 이수 여부 등이 엄격하게 심사된다.
이러한 시스템의 최대 장점은 유연성이다. 비윤리적 행위나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의 학문적 지위는 유지하되 실제 환자를 대면하는 행위 권한만을 즉각적으로 정지시키거나 제한할 수 있다. 한국처럼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동료 전문가들이 판단하기에 위험한 의사라면, 즉각 진료 현장에서 배제하여 환자의 안전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법조계의 자율 징계 안착과 대비되는 의료계의 무권한 상태
우리나라 법조계는 이미 전문가 단체의 자율적 통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법에 근거하여 소속 변호사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권과 징계권을 행사한다.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징계 건수는 2020년 85건에서 2024년 206건으로 급증했다. 여기에는 단순한 견책이나 과태료뿐만 아니라 정직과 제명 조치까지 포함되어 있다. 변협은 자체 징계위원회를 통해 법률가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이들을 스스로 걸러낸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어떤가. 소속 회원의 명백한 비윤리적 행위를 인지하더라도 보건복지부에 징계를 건의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조사권도, 징계권도 없는 전문가 단체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결국 공권력에 의한 일괄적 통제만을 부추기며, 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무시한 경직된 행정 처분으로 이어진다.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부적격자를 징계할 수 없는 구조는 결국 집단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든다.

1970년대 유신 시대의 중앙집권적 통제 방식에서 탈피하라
현재의 단일 면허 체제와 보건복지부 중심의 행정 통제는 1970년대 유신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국가는 효율적인 인력 관리를 위해 모든 전문 자격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도로 전문화되고 복잡해진 현대 의료 환경에서 공무원이 의사의 전문적 판단이나 비윤리적 행위의 세밀한 맥락을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5년 다나의원 사태 당시 정부가 내놓은 개선안 역시 전문가 자정보다는 행정적 취소에만 무게를 두었다.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의사 면허를 오직 행정부의 허가와 취소 영역으로만 묶어두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다. 전문가 집단에게 실질적인 조사권과 징계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료들의 눈이라는 가장 무서운 감옥에 가두는 것이며, 전문가로서의 무거운 도덕적 책임을 강제하는 장치다. 무조건적인 행정 처분보다 동료 의사들의 냉정한 평가를 통해 위험한 의사를 선제적으로 배제하는 시스템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전문가 집단의 자율 규제가 환자 안전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의사 면허를 학문적 자격과 실제 행위 권한으로 이원화하고, 전문가 집단에 실질적인 자율 징계권을 부여하는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의료인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전문가집단이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의 명예를 걸고 부적격자를 퇴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고 전문가 집단은 비윤리적 회원에 대해 실질적으로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2026년 대한민국 의료계가 마주한 이 과제는 단순히 의사들의 권익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문가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환자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행정 통제의 도구가 된 면허를 내려놓고, 전문가의 양심과 동료의 감시가 작동하는 선진국형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더 이상 늦출 여유가 없다. 우리가 이 변화를 거부한다면, 제2, 제3의 강 원장은 언제든 다시 나타나 환자의 머리맡에서 메스를 들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