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로 묶은 지역의료의 한계 극복을 위한 ‘지역의사제도’의 법적·구조적 모순과 선결 조건을 진단한다
25일 오후, 서울 대한의사협회 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의료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제10차 의료정책포럼이 열렸다. ‘지역의사제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내건 이번 포럼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 및 ‘지역의사전형’ 운영 방침에 대한 현장의 우려와 정책적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지난 10일, 2027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단계적으로 늘려 5년간 연평균 668명 수준의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증원분 대부분을 비서울권 32개 의대에서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한다는 방침이 전해지며, 제도 설계의 타당성과 기본권 침해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 세계 유례없는 ‘면허 취소’의 족쇄와 법적 모순
포럼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창수 의협 정책이사는 현재 추진 중인 지역의사법안의 구조적 모순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행 안의 핵심은 지역의사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에게 10년간의 지역 의무 복무를 강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의사 면허 취소’라는 극단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김 이사는 이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징벌적인 제재 기제”라고 규정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 법안의 가혹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는 대만의 경우, 의무 복무 불이행 시 지원금 전액을 반환하는 ‘바이아웃(Buy-out)’ 제도를 통해 경제적 배상으로 진로 변경의 유연성을 부여한다. 일본 역시 전문의 자격 부여 제한 등 간접적인 제재를 활용할 뿐, 면허 자체를 박탈하는 극단적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
김 이사는 “장학금 반환이라는 경제적 해결책이 있음에도 직업적 사형 선고인 면허 취소를 선택한 것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30일 이상의 질병 휴직이나 육아 휴직 기간조차 복무 기간에서 제외하는 시행령안은 국가적 저출산 대책 기조와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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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로 묶은 인력의 역설, 대만은 왜 실패했나
제도는 인력을 강제로 배치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자발적 헌신과 지역 정착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김창수 이사는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공유 자원 관리 이론을 인용하며, 외부의 강압적 통제가 초래할 ‘공유지의 비극’을 경고했다. 실제로 대만의 공비 의사 제도는 의무 복무가 끝난 직후 이탈률이 무려 84%에 달한다. 강제로 묶어둔 인력은 복무 기간이 끝나는 순간 가장 먼저 지역을 탈출한다는 ‘제재의 역설’을 증명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낙인 효과다. 지역의사전형을 통해 선발된 인력이 ‘강제 배치된 2류 의사’라는 인식을 받게 될 경우, 환자들의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김 이사는 “수련 환경이 부실한 지방 의료원에서 증례 부족과 지도 전문의 부재를 겪으며 10년을 보낸 의사가 임상 역량을 제대로 갖추기는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지역 주민들조차 이들을 신뢰하지 않아 다시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사 숫자’보다 시급한 수도권 병상 관리와 전달체계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유일 전남대 의대 교수는 지역의사제 성공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의료 시스템 전반의 개편을 촉구했다. 김 교수는 “환자는 무조건 서울로 가는데 의사 숫자만 늘리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며, 충북 지역 환자의 사례를 제시했다. 한 해 충북 지역 환자 8만 명이 경기도와 인천 등 타지역에서 진료를 받는데, 이 중 85%는 지역 내 의료기관 역량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환자들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지역 의료 붕괴의 원인이 의사 부족보다는 ‘수도권 병상 과잉’과 ‘진료권 제도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분원을 추진하며 2030년까지 6,000병상 이상이 추가될 예정인 상황에서, 어떤 지역의사제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1989년 도입됐다가 1998년 폐지된 ‘의료보험 진료권 제도’의 재도입 검토를 제안했다.
1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 없이는 타지역 2, 3차 병원 이용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이송·전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공중보건의사 수가 2010년 5,179명에서 2024년 2,855명으로 급감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혈세로 새로운 인력을 육성하기보다 기존의 공보의 인력 확보와 유인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제언했다.
통제에서 신뢰로, 지속 가능한 지역의료를 위한 제언
포럼에 참여한 패널들은 지역의료 회복을 위해 ‘의사를 묶어두는 쇠사슬’이 아닌 ‘정주를 꿈꾸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의견이다. 수가 현실화를 통해 필수의료의 가치를 보장하고, 지방 의료원을 최첨단 장비를 갖춘 스마트 병원으로 육성하여 의사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진료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현행 지역의사법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단기적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중앙 정부의 수직적 명령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율적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지역의사제도가 단순히 의사 인력을 강제 배치하는 수준을 넘어, 수도권 병상 수급 관리,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그리고 교육 및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복합적인 선결 조건이 해결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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