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 “삶의 마지막을 선택한다는 것”, 독립 특별법과 촘촘한 안전망이 전제돼야
📢 핵심 3줄 요약
1.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사각지대를 지적하며 의사조력사 제도화를 위한 독립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해 말기 환자 한정형부터 포괄형까지 4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엄격한 모델 도입을 권고했다.
3. 단순한 죽을 권리 논의에 앞서 호스피스 확충 및 간병 지원 등 촘촘한 사회적 돌봄 안전망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26일 발간한 ‘NARS 현안분석’ 제429호를 통해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 유형과 국내 입법의 방향성 검토”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은정 입법조사관(보건학박사)이 작성한 이번 보고서는 생애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과 헌법상 국가의 생명보호의무 사이의 균형점을 심도 있게 검토했다. 보고서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의사조력사가 단순한 ‘죽을 권리’ 차원의 조급한 입법으로 흘러서는 안 되며 사회적 안전망이 완비된 상태에서만 작동하는 ‘최후의 보루’로 다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연명의료결정법 8년의 사각지대와 스위스행이 던진 묵직한 물음
보고서는 2018년 2월 시행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제도화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명문화한 첫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행 법제가 엄밀한 의미의 임종기 환자에게만 작동하도록 국한돼 있어 중대한 제도적 공백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임종기에 접어들지 않았으나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는 말기·비말기 중증질환자나 중증 장애 환자 등은 현행 연명의료 유보·중단 체계에서 실질적인 대응 수단을 전혀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제도적 틈새 속에서 해외 원정 조력사망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부상했다. 보고서는 스위스의 대표적 조력사망 단체 디그니타스에 2025년 말까지 한국인 11명이 조력사망을 신청했고, 144명이 서비스 이용을 문의하거나 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개인이 해외 조력사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류 번역, 비용 마련, 출국 동행 등에 관여한 가족과 지인이 형법상 자살방조죄의 처벌 위험에 노출되는 등 법적·도덕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단순히 약물을 투여받아 생명을 앞당기는 행위는 치료 중단을 목표로 삼는 연명의료결정과 법적·윤리적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21대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된 데 이어, 제22대 국회에서도 2024년 7월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단행법 형태의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이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지만, 형법상 자살방조죄 및 촉탁·승낙살인죄와의 충돌 문제로 인해 제도화 논의는 여전히 초기 공론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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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한정’부터 ‘포괄형’까지… 4가지로 나뉘는 글로벌 제도 모델
보고서는 해외 주요국의 의사조력사 제도를 허용 행위, 대상 요건, 법제 형태, 감독 체계 등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첫째는 미국 오리건주 등으로 대표되는 ‘말기환자 한정 의사조력자살(PAS) 모델’이다. 보고서는 이 모델이 여명 6개월 내외의 말기 환자로 대상을 엄격히 한정하고 환자가 처방받은 치사약을 스스로 복용하는 방식만 허용하며 의사가 직접 투약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철저히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한 이 모델이 생명 단축 행위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는 장점이 있으나, 스스로 약을 삼키지 못하는 중증 환자의 접근성이 차단되고 여명 판단이 불분명한 만성 고통 환자는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이 채택한 ‘포괄형 모델’이다. 보고서 이들 국가가 환자 자기복용(PAS)과 의사의 직접 투약(적극적 안락사)을 모두 단일 법률 내에서 허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모델은 말기 여부보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핵심 요건으로 삼기 때문에 비말기 질환이나 복합 장애 환자까지 대상이 확대되는 특징을 보인다. 보고서는 네덜란드의 2024년 안락사 연례보고에서 치매 환자 427건과 정신질환 환자 219건이 포함된 사실을 언급하며, 포괄형 모델이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slippery slope)’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셋째는 캐나다(MAID)와 호주(VAD)의 ‘의료적 조력사망 모델’이다). 보고서는 이 모델이 조력사망을 의료·돌봄 체계 내부의 공적 의료 서비스로 흡수해 일괄 관리하는 형태라고 정리했다. 캐나다는 2021년 형법 개정을 거치며 자연사가 임박하지 않은 비말기 만성질환·장애 환자에게까지 제도를 적용하는 ‘트랙 2’를 신설했다. 보고서는 캐나다의 이러한 대상 확대로 인해 충분한 사회적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이 죽음으로 내몰린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넷째는 스위스와 독일의 ‘민간단체 기반 특수 허용 모델’이다. 보고서는 스위스가 형법 제115조를 통해 이기적 동기 없이 이루어진 자살 방조를 불처벌함으로써 비영리 민간단체를 통한 조력자살이 관행적으로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독립된 법률과 공적 감독 기구가 부재해 민간단체의 자체 규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사후적 사법 판단에 머물러 국가 차원의 안전장치가 취약하다는 점이 구조적 한계로 꼽혔다.

기존 법 개정인가 별도 특별법인가… 체계정합성을 둘러싼 입법 쟁점
보고서는 향후 국내에서 의사조력사를 제도화할 경우 검토 가능한 입법 방식으로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과 독립 특별법 제정안 등 두 가지 갈래를 제시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정해 조력사망을 편입하는 방안에 대해, 기존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나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 기구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행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소극적으로 생명유지 치료를 중단하는 연명의료결정과 적극적으로 치사약을 처방하는 의사조력사는 법적·윤리적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못 박았다. 두 제도를 하나의 법률에 무리하게 병합할 경우 생명 단축과 연명치료 중단 사이의 규범적 경계가 흐려져 법체계의 정합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의사조력사를 독립된 특별법(단행법)으로 제정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훨씬 설득력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별법을 제정할 경우 대상 질환, 여명 요건, 의사결정능력 평가, 다학제 심사위원회 운영, 필수 숙려기간 등을 일관된 체계 안에서 빈틈없이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형법 제252조(촉탁·승낙살인죄 및 자살방조죄)와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형법 제20조의 포괄적 정당행위에 기대어 위법성을 조각하려는 시도는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완벽히 준수한 행위에 한해서만 형법상 처벌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특별법상 면책 규정이 필수적이라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동시에 법정 절차를 벗어난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 형법의 형사책임이 엄격히 적용됨을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치료’와 ‘종결’의 충돌… 의료행위 개념 재정의와 양심적 거부권
보고서는 의사조력사가 도입될 경우 발생할 의료법 체계와의 근본적 충돌 지점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행위를 질병의 예방, 치료, 재활, 생명 연장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치사약을 처방하는 조력사망 행위는 의료인의 본질적 사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이미 환자의 최선의 이익으로 수용된 법적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다만 조력사망을 의료의 바깥에 둘 것인지, 아니면 극단적 고통 속에서 환자의 자기결정을 실현하는 예외적 의료행위로 포섭할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만약 법제화가 추진된다면 의료법 제2조(의료인의 사명)나 특별법 규정을 통해 법률이 정한 조력존엄사 지원 행위를 정당한 직무 범위로 인정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의료인의 ‘양심적 거부권’ 보장 역시 핵심 쟁점으로 제기됐다. 현행 의료법 제15조는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종교적·윤리적 신념에 따라 조력사망 참여를 거부하는 의사의 결정을 진료거부 금지 위반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이나 의료법 개정을 통해 양심적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는 명문의 면책 규정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보고서는 의료인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환자의 합법적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역별 전담 공공 의료기관을 지정하거나 전담 지원팀을 구성함으로써, 개별 의사의 양심을 보호하면서도 환자의 제도 접근권이 형해화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적 타살 막는 ‘최후의 보루’… 촘촘한 돌봄 안전망이 먼저다
보고서는 조력사망 제도가 차갑고 기계적인 행정 절차나 생명 청산의 도구로 전락하는 위험성을 가장 엄중하게 경고했다. 보고서는 미국 오리건주의 2024년 통계에서 조력사망 선택자의 42%가 ‘가족이나 돌봄 제공자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서’를 주요 이유로 꼽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보고서는 간병할 가족이 없어서, 치료비가 없어서, 혹은 사회적 짐이 될까 두려워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은 개인의 존엄한 결정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 부재가 초래한 ‘구조적 타살’이라고 단언했다.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극단의 신체적 고통으로 인한 선택과, 경제적 궁핍과 돌봄 부재로 내몰리는 선택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보고서는 조력사망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지를 논의하기에 앞서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복지망의 총체적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한 적극적인 통증 완화 의료의 전면적 보장, 호스피스 완화의료 인프라의 획기적 확충, 중증 환자 간병 부담을 덜어주는 공적 돌봄 서비스,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주거 및 의료비 지원, 고립된 독거노인을 위한 사회적 돌봄망이 완벽히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히 보장된 상태에서도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극단적인 고통에 직면했을 때만 의사조력사라는 카드를 논의의 장에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해외의 성급한 포괄형 모델을 무분별하게 답습하기보다는, 엄격한 심사 절차와 의사결정능력 평가, 복수 의사의 진단, 충분한 숙려기간을 담보한 ‘말기 환자 중심의 엄격한 모델’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적 합의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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