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읽기 유전자는 없다, 로제타석이 보여준 ‘문자의 힘’ 및 인류 뇌의 신경 가소성 메커니즘 분석
기원전 19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제타석은 인류 역사가 망각했던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푸는 결정적인 열쇠가 됐다. 그리스어와 민중 문자, 상형문자가 동시에 새겨진 이 돌은 문자가 인류의 지식을 시공간의 제약 없이 전승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뇌는 본래 글자를 읽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역사는 약 5,000년 내외로, 수십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인간의 유전체에는 ‘읽기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개인은 태어난 후 학습을 통해 뇌의 특정 영역을 재편성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신경 회로의 재활용과 읽기의 탄생
현재 뇌과학계는 인간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이유를 ‘신경 가소성’과 ‘신경 재활용’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본래 자연계의 사물을 식별하고 포식자를 감지하며 사냥감을 추적하기 위해 진화했다. 문자를 읽는 과정은 시각 피질의 일부가 글자의 모양을 인식하는 ‘시각적 단어 형태 영역(VWFA)’으로 용도 변경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는 마치 기존의 건물을 허물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만 바꿔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2010년 12월 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인지신경영상유닛(UNICOG) 소속 스타니슬라스 드앤(Stanislas Dehaene) 교수팀의 연구[How Learning to Read Changes the Cortical Networks for Vision and Language]에 따르면, 문자를 익힌 성인의 뇌는 문맹자의 뇌와 비교했을 때 시각 피질에서 좌측 측두엽 하단 영역이 활성화되는 정도가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스타니슬라스 드앤 교수는 뇌가 시각적 대상을 구별하는 기존 회로를 문자의 기하학적 구조를 인식하는 데 할당함으로써 읽기 능력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인지 과부하와 뇌의 피로
문제는 현재 현대인이 처한 독서 환경이 뇌의 진화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종이책을 통한 선형적 독서는 깊은 집중력과 추론을 요구하지만, 스마트폰과 PC를 통한 디지털 독서는 훑어보기(Skimming)와 건너뛰기(Scanning)가 주를 이룬다. 디지털 매체는 끊임없는 하이퍼링크와 알림을 통해 뇌의 주의 집중을 분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뇌는 전두엽의 집행 기능을 과도하게 사용하게 되며, 이는 곧 인지적 피로와 고통으로 이뤄진다.
문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뇌에는 인위적인 강제 노동에 가깝기 때문에, 정보가 쏟아지는 현재의 환경에서 뇌는 생존을 위해 정보 수용을 거부하거나 최소화하려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다. 이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만 머릿속에서 해석되지 않는 현상, 즉 디지털 난독증의 근본 원인이 된다.

백질의 가소성과 읽기 훈련의 연관성
뇌의 고통은 신경 회로가 효율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때 더욱 증폭된다. 글자를 읽을 때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소통하느냐가 독서의 질을 결정한다. 2018년 10월 15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및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소속 제이슨 이트먼(Jason D. Yeatman) 교수팀의 연구[Rapid plastic changes in white matter during reading training]에 따르면, 집중적인 읽기 훈련을 받은 피험자들의 뇌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백질(White Matter)’의 미세 구조가 단 몇 주 만에 변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읽기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뇌의 시각 영역과 언어 영역을 잇는 신경 통로의 전도율이 높아진다. 이는 숙련된 독서가일수록 뇌가 느끼는 부하가 줄어들며, 반대로 훈련되지 않은 뇌가 복잡한 텍스트에 노출될 경우 신경학적 에너지 소모가 극대화되어 실질적인 신체적 통증이나 피로감을 느낄 수 있음을 나타낸다.
사고의 깊이를 결정하는 매체의 물리적 성질
로제타석이 보여준 문자의 영속성은 현대의 휘발성 정보들과 대조를 이룬다. 종이는 물리적인 위치와 두께를 통해 뇌에 공간적 이정표를 제공한다. 독자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 특정 내용을 읽었는지 입체적으로 기억하지만, 끝없이 아래로 흐르는 스크롤 방식의 디지털 환경은 이러한 공간적 기억을 방해한다.
뇌는 텍스트를 하나의 ‘지형’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지형이 계속해서 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뇌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리게 된다. 결국 현대인이 글자를 읽을 때 느끼는 고통은 문명적 산물인 문자와 생물학적 기관인 뇌 사이의 시차, 그리고 아날로그적 뇌가 견디기 힘든 디지털 정보의 속도와 방식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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