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의 주요 사인 1위, 피부 화농성 질환인 ‘종창’, 세종대왕은 당뇨 합병증과 면역력 저하로 인한 복합 질환에 시달려
조선시대 왕들은 당대 최고의 의료진인 어의들의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준으로는 비교적 짧은 생을 마감했다. 조선 국왕 27명의 평균 수명은 약 47세에 불과했다. 이들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종창(腫脹)’이었다.
종창은 오늘날의 피부 농양이나 종기, 봉와직염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문종, 성종, 효종, 정조 등 많은 왕이 종창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특히 세종대왕은 단순한 종창 뿐만 아니라 현대의 성인병에 해당하는 다양한 만성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실록에 기록돼 있다.

왕들의 명을 재촉한 공포의 질환, 종창
조선 왕실에서 종창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닌 국가적 비상사태를 초래하는 위중한 질병이었다. 종기 자체가 사망 원인이 되는 이유는 박테리아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기에 종기 부위가 부어오르고 고름이 차오르면 침으로 이를 째거나 고약 등을 붙이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었다. 감염이 심부 조직까지 퍼질 경우 전신 염증 반응이 일어나며 장기 부전으로 이어졌다.
효종의 경우 얼굴에 난 종기를 침으로 찔렀다가 혈관을 건드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 역시 등 뒤에 생긴 종창이 악화되어 승하했다. 이는 왕들이 운동 부족과 고칼로리 식단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왕들은 과중한 정무로 인해 만성 피로에 시달렸으며, 이는 신체 저항력을 떨어뜨려 작은 상처도 치명적인 감염원으로 작용하게 만들었다.
고기 사랑과 운동 부족이 부른 세종대왕의 종합병
세종실록에 기록된 세종의 건강 상태는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이었다. 세종은 육식을 매우 즐겼으며 식사 때마다 고기 반찬이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반면 운동량은 극히 적어 체구가 비대했다. 이러한 생활 습관은 ‘소갈(消渴)’, 즉 현대의 당뇨병으로 이어졌다. 세종은 30대 중반부터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뇨병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했다. 세종은 안질(眼疾)로 인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길 정도로 고통받았다. 이는 당뇨병성 망막병증이나 백내장으로 추정된다. 또한 다리가 붓고 통증이 심해 걷기 힘들어했는데, 이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이세라 바로척척의원 원장 (외과전문의)은 “과거에는 항생제가 없어 단순한 피부 농양도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흔했다”며 “특히 세종대왕처럼 당뇨를 앓는 환자는 면역력이 낮아 종창이 전신으로 퍼질 위험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현대 의학으로 본 세종의 건강검진 결과
세종대왕의 질병 기록을 바탕으로 현대식 건강검진을 실시한다면 고혈압,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이 겹친 ‘대사증후군’ 판정이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세종은 말년에 피부병인 종창까지 겹쳐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당뇨 환자는 혈당이 높아 균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이 때문에 작은 상처가 쉽게 낫지 않고 거대한 종창으로 발전하기 쉽다.
세종이 겪었던 요로결석 추정 증상 또한 식습관과 관련이 깊다. 육류 위주의 식단은 요산 수치를 높여 결석 형성을 촉진한다. 실록에는 세종이 소변을 볼 때마다 통증을 호소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역시 부신피질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어 혈당 조절을 방해했을 것이다. 세종은 재임 기간 내내 이런 만성 질환들과 싸우며 훈민정음 창제 등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 인내심이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 왕들의 사인 1위가 종창이었던 것은 위생 관념의 부재보다는 영양 과잉과 활동량 부족으로 인한 면역 체계 붕괴가 근본 원인이었다. 항생제와 혈당 조절 약물이 대중화된 현대에는 간단히 치유될 수 있는 질병들이 당시에는 왕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무서운 재앙이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도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역사적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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