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원짜리 주사제가 사라진 이유, 제약사가 공급 끊어야 움직이는 정부?
📢 핵심 3줄 요약
1. 소아 경련 치료 필수약인 로라제팜 주사제 가격이 2024년 11월 1일부터 804원에서 5682원으로 7배 인상된다.
2. 낮은 수익성으로 인한 공급 중단 사태가 반복되자 정부가 뒤늦게 가격을 현실화하며 공급 정상화에 나섰다.
3. 의약품뿐만 아니라 수술 등 필수의료 행위 전반의 저수가 구조와 제로섬 방식의 수가 제도가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음 달 1일부터 응급실과 소아 병동에서 쓰는 신경안정 주사제 로라제팜의 보험 약가가 804원에서 5682원으로 오른다. 7배다. 소아 경련과 뇌전증 중첩증에 쓰는 국가필수의약품인데, 지난해부터 공급이 흔들려 현장 의사들이 애를 태웠다. 강화된 무균 제조 기준을 맞추려면 설비 투자가 필요했지만, 앰플 하나에 800원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국 다른 제약사가 허가를 넘겨받고, 정부가 가격을 7배로 올려주고서야 공급이 정상화됐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봤다. 2017년 소아 심장수술용 인조혈관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던 미국 고어사는 거듭된 보험상한가 인하 끝에 한국을 떠났다. 2년 뒤 병원 재고가 바닥나자 폰탄 수술을 기다리던 아이들의 수술이 미뤄졌고, 그제야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 본사로 날아갔다. 2024년 겨울에는 분만에 쓰는 옥시토신이 품절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소아 척추측만증 수술 재료를 공급하던 업체가 전 품목을 철수하면서 수술이 멈췄다. 최근 5년간 공급이 중단된 퇴장방지의약품만 71건이고, 그중 32건의 사유가 ‘채산성 악화’였다.

패턴은 한결같다. 정부가 원가보다 낮은 가격을 매긴다. 공급자는 한동안 버티다 떠난다. 환자가 피해를 본 뒤에야 가격을 올려준다. 그 사이 쌓인 피해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 패턴은 약과 재료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의사의 노동, 즉 행위료도 똑같은 구조에 놓여 있다. 정부 자료를 인용한 국회 청문회 지적에 따르면, 수술은 원가 100원을 들이면 건강보험에서 81원을 돌려받는다. 반면 검체검사는 100원을 들이면 135원을 받는다. 소아청소년과 진료의 원가 보전율은 79% 수준이다. 내과계 병의원들은 박리다매를 통한 진료 즉 3분 진료를 하지 않으면 적자를 면할 수 없다. 또 외과계 의사들 수술을 많이 할수록 손해가 쌓이는 구조다. 비급여가 없다면 역시 적자를 면할 수 없다.
내시경 지혈 클립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위장관 출혈을 막을 때 클립을 여러 개 쓰는데, 한때 그 비용은 지혈술 수가에 묶여 따로 청구할 수 없었다. 클립을 많이 쓸수록 병원 적자가 커졌다. 출혈 환자를 끝까지 치료한 병원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었다.
제약사가 앰플 생산을 접듯, 젊은 의사들도 전공을 고를 때 같은 계산을 한다. 2024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 충원율은 26%, 흉부외과는 38%에 그쳤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60%가 대학병원을 떠나 개원의 길을 택했다는 보도도 있다. 기업이 공급을 멈출 수 있듯, 의사도 자기 노동의 공급처를 바꿀 수 있다. 기피과는 사명감이 모자라서 생긴 것이 아니다. 가격 신호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다. 젊은 의사들에게서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더 큰 문제는 바로잡는 방식이다. 우리 수가 제도는 상대가치 제도에 의해 총점이 묶여 있다. 그래서 한 분야의 수가를 올리려면 다른 분야에서는 깎아야 한다. 저평가된 수술 하나를 정상화하는 데도 매번 제로섬 다툼이 벌어진다. 그러니 정부는 사태가 터진 뒤 해당 품목 하나에 ‘7배 인상’ 같은 땜질을 반복한다.
그러나 의사는 약과 다르다. 허가를 넘겨받아 내일부터 생산을 재개할 대체 공급자가 없다. 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의 전문분야에서 의사 한 명을 키우는 데 10년이 넘게 걸린다. 수가를 7배로 올려준다고 사라진 한 세대가 금방 돌아오지는 않는다.

얼마 전 지방의 한 2차 병원에서 평생 수술을 해 온 외과 선배를 만났다. 이제 체력이 다해 봉직을 내려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걱정한 것은 자신의 은퇴가 아니었다. 지방에는 맹장 수술조차 하지 못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술할 외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 때문에 잘못된 환자가 없지만, 곧 나올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충수절제술은 외과에서 가장 흔하고 기본적인 수술이다. 외과 전공의가 가장 먼저 배우는 수술이기도 하다. 그 수술을 맡을 사람이 없는 지역이 생긴다는 것은 의료의 가장 아랫단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분만실이 사라지는 문제는 저출생과 맞물려 크게 보도된다. 하지만 맹장염, 장폐색, 탈장 감돈처럼 제때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질환을 맡을 의사가 하나둘 손을 놓는 현실은 좀처럼 뉴스가 되지 않는다.
이는 더 이상 ‘돈이 안 되는 진료’의 문제가 아니다. 수술을 맡을 사람 자체가 남지 않은, 공급이 끊긴 상태로 넘어가고 있다. 로라제팜처럼 가격을 올려 다음 달부터 되살릴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고 있다. 그 선배처럼 지방 수술실을 지키던 세대가 떠나고 나면, 그 자리를 이어받을 후배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기피과의 원인이 저수가만은 아니다. 저출산, 사법 리스크, 고된 근무 환경이 함께 작용한다. 하지만 이 요인들도 결국 ‘위험과 노동에 걸맞은 보상이 없다’는 문제로 모인다. 생명을 다루는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보상받는다는 믿음이 무너진 것이다.
해법의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필수 의약품과 치료재료, 의료행위의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재산정해야 한다. 둘째, 총점 고정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제로섬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의약품 공급 중단 신고와 전공의 충원율을 조기경보 지표로 삼아, 사태가 터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넷째 과도한 의료이용을 줄여야 한다.
젊은 의사들은 위험성이 적은 진료 분야를 선택한다. 국민들의 소득과 문화 수준도 과거와는 다르다. 피부미용 시술을 통해 젊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출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황이 건강보험을 시작하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
804원짜리 주사약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고 7배를 주고 되살렸다. 외과계 의사가 사라진 뒤에는 얼마를 주면, 또 얼마에 시간을 들여야 되살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