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 국책연구기관과 의료정책연구원 간 건보재정 증가원인 해석차 두드러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 분석 결과를 두고 의료계와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KDI는 인구 고령화보다 ‘진료 단가 상승’이 건강보험 지출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한 반면,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러한 분석 방법에 한계가 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건보 지출 증가 주범은 ‘진료 단가 상승’… KDI 분석 결과
KDI는 지난 21일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 흐름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지출 증가율은 중앙정부 재정지출 증가율의 2배를 상회하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인구 1인당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10년 전인 2009년 대비 2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건강보험 지출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가격 요인’으로, 전체 증가분의 76.7%를 차지했다. 반면 의료 서비스 이용량을 의미하는 ‘수량 요인’의 기여도는 14.6%에 그쳤고,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인구 요인’은 8.6%에 불과했다. 이는 의료비 상승의 주된 원인이 ‘진료비 증가’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KDI는 밝혔다.
가격 요인을 의료기관 종별로 분석한 결과, 동네 병원(의원급 의료기관)의 가격 요인이 진료비 증가의 24.9%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보였다. 상급종합병원은 17.0%, 종합병원은 14.6%로 나타났다. 또한 입원서비스보다는 외래서비스에서 가격 요인의 상승 기여도가 더 컸는데, 이는 암 등 고비용 질환의 외래 중심 치료 전환, 진료 강도의 상승, 고가 서비스 이용 증가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인구 고령화 영향은 제한적… ‘건강한 고령화’ 현상 주목
KDI 보고서는 의료 이용 빈도가 전반적으로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입원서비스 이용은 2009년 대비 45.9% 증가했지만, 연간 증가율은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용 빈도를 나타내는 수량 요인의 기여도 역시 감소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특히 고령화에 따른 진료비 지출 증가는 초고령층에서만 확인됐을 뿐, 전반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65~74세 ‘전기 고령층’에서는 오히려 진료 이용량이 감소하면서 건강보험 지출 증가세가 둔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KDI는 이를 과거보다 건강 상태가 좋은 ‘젊은 노인’이 늘어나면서 ‘건강한 고령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반면 85세 이상에서는 의료서비스 이용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에 KDI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여러 정책을 제안했다. 권정현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지출이 계속 늘어남에도 이를 통제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상태”라며,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이 ‘주치의’로서의 1차 의료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불필요한 고비용 진료 억제, 묶음지불제 도입, 성과 기반 보상제도, 재정지출 평가체계 공식화 등의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에 대한 평가를 정례화하고, 평가 결과에 기반해 지출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공식화할 것을 주문했다.
의료정책연구원 “분석방법 한계와 해석상 문제점 있다”
KDI의 분석 결과에 대해 의료정책연구원은 24일 의견을 제기하며 반박했다. 의정연은 우선 KDI Focus의 근간이 되는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 분석과 지출 효율화 방안 연구(2023)’ 보고서가 아직 발간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을 가격, 수량, 인구요인으로 분해하여 분석하는 방식에는 방법론적 한계와 해석상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단순한 가격 상승과 서비스의 강도(intensity)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의정연은 “단순히 동일 서비스에 대한 가격 상승이 아닌, 더 높은 품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인한 비용 증가가 ‘가격 요인’으로 집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최신 의료 장비 도입, 고품질 의약품 사용, 전문화된 의료서비스 제공 등은 비용 증가를 유발하지만, 이는 동시에 의료의 질적 향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비스 강도(intensity), 질병의 복잡성(complexity), 기술혁신(innovation) 등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 가격요인으로만 귀결시키는 것은 방법론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의정연의 주장이다.

국민소득 증가와 의료서비스 수요 변화 고려해야
의정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 근거중심 의학의 확산, 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환자가 병원을 이용할 때 소요되는 의료자원과 진료비가 과거에 비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의료비 지출 규모를 보여주는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09년 5.9%에서 2019년 8.1%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18.5% 인상됐으며, 1인당 명목국민소득 증가율은 56.3%(2,542만 원→3,974만 원)에 달했다. 의정연은 명목국민소득 증가로 의료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가격탄력성이 낮은 의료서비스 재화의 특성으로 인해 고급의료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니즈가 증가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의료체계의 효율성과 비용 효과성 주장
의정연은 “우리나라는 전문의 중심의 일차의료를 구축해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 최적의 치료계획 수립, 질병 진행 및 합병증 예방, 전문가에 대한 신뢰로 환자의 심리적 안정감 증진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급병원에서 고비용으로 진료받아야 할 질환을 일차의료에서 저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진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기관 방문 건당 진료비 역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2025년 4월 기준, 영국의 GP(일반의) 비용은 약 7만 7,300원, 캐나다의 서비스 비용은 약 11만 8,400원인 반면, 한국의 외래방문 비용은 약 5만 1,928원으로, 한국의 건당 진료비는 주요국의 50%~6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의정연은 “우리나라는 저비용으로 모든 건강지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효율적 운영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할 때는 단순 요인 분해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다차원적이고 정교한 분석 방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지표만으로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평가하는 오류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번 논쟁은 향후 건강보험 재정 운영 방향과 의료체계 개편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에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분석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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