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체검사 전면 중단’ 불사, “필수의료 붕괴” 목전… 의료계, 정부 ‘검체검사 개편안’에 “총궐기” 선언
11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 광장이 수백 명 의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주최로 열린 ‘검체검사 제도개편 강제화 전면 중단 촉구 대표자 궐기대회’에 참석한 전국의 의사 대표자들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일차의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강력히 규탄했다.
평일 오후 진료 시간을 뒤로하고 세종까지 달려온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개편안’이 의료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들은 만약 정부가 이 개정안을 강행할 경우, 1차 필수의료가 말살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의료 중단’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의료현장 무시한 폭주”… 정부 자체 연구용역도 ‘외면’
궐기대회에 나선 의료계 지도자들은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나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공론화 과정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밀어붙였다고 맹비난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정부가 지난 10월 29일 ‘검체검사수탁인증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의료현장의 의견도, 공론화 과정도 없이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상정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 회장은 “수탁기관 중심으로만 보상체계 개편안이 논의됐으며, 사실상 의료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며 “이것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폭주”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일방적 추진은 의정 간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격려사에서 “당초 약속했던 협의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여 의정 간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스스로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마저 무시했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연대사에서 “정부 스스로 발주한 연구용역에서도 진료과별 특성과 방대한 검사 항목의 차이, 현행 시장 질서를 고려하여 자율적 계약을 통한 안정적 운영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명확히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김택우 회장 역시 “2023년 복지부의 자체 연구용역에서 현행 시장질서에 따른 자율적 계약 유지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제시된 바 있다”며 “정부가 그 결과마저 무시하고 근거 없는 개편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검체검사 하면 할수록 손해” 산부인과·류마티스내과, 정부 정책 강행 시 ‘진료 중단’ 경고
“1차 의료 말살 행위”… “환자 건강권 침해 불 보듯”
의료계가 이번 개편안에 이토록 격렬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 제도가 1차 의료기관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근태 회장은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개편 문제는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일차의료기관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라며 “검체검사 수탁 비중이 높은 필수 진료과의 일차의료기관을 붕괴시키고, 국민이 믿고 찾던 지역의료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했음을 강조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성세용 시흥시의사회 총무이사는 더욱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이 말도 안되는 검체검사 개정안이 통과되면 많은 1차 의원들은 이제 혈액검사를 안 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검사를 통해 선제적으로 질병을 찾아서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 결과 환자의 건강권은 침해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택우 회장 역시 “지난 20년간 상호존중 하에 정착되어온 현행방식의 검체검사 시스템으로 우리 국민들께서는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편리하게 검사를 받고 신속히 치료받을 수 있었다”며 “그것이 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였으나, 정부의 폭압적 정책으로 이제 그 안전망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의사 죽이기 통한 재원 확보” vs “필수의료 살리기”의 역설
정부가 무리하게 개편안을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의사 집단’을 희생양 삼아 재원을 확보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격한 주장도 터져 나왔다.
성세용 이사는 “정부가 이 말도 안되는 검체검사 개정안을 시행하려는 목적은 다름 아닌, 의사 죽이기를 통한 재원 확보”라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재원을 1~2조 확보하고, 1차 의료 죽이기를 통해 상급병원의 의사 수를 늘리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를 외치면서 정작 필수의료의 시작점인 1차 의료를 고사시키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 이사는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 올리겠다면서, 달랑 진찰료 140원 올리고, 검체검사 관련 인력 인건비, 장비 및 시설, 공간 임대료, 행정비용, 법적 책임에 대한 보상 등은 없이 말도 안되는 정산비율로 1차 의료의 생존 수가를 없애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의료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통제 대상으로 간주하며 현장의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 채 오직 정부의 재정 논리와 행정 편의에만 매몰된 전형적인 행정 독재이자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규정했다.
“검체검사 넘어 성분명 처방까지”… 의료계, “공식 협의체 구성” 강력 요구
이번 궐기대회에서는 검체검사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의료계가 반대하는 여러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도 표출됐다.
장선호 세종특별자치시의사회 회장은 자유발언에서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개편 외에도 성분명 처방 강제 입법안,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시도 등 여러 잘못된 정책들이 계속하여 추진되고 있다”며 “이 모든 문제는 저수가로 시작된 사회주의적 의료보험의 태동에서 시작됐다”고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의료계는 정부를 향해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의료계가 참여하는 공식적인 논의 구조를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박근태 회장은 “정부는 즉각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개편의 일방적인 추진을 전면 중단하라”며 “대한의사협회, 대한개원의협의회, 각과 의사회가 참여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논의 구조를 즉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의협 역시 성명서를 통해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를 지체 없이 구성하라”며 “의료인의 전문성과 노력이 정당하게 반영되는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의료계 대표자들은 정부가 끝내 이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개편안을 강행할 경우,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총력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성세용 이사는 “우리의 생존과 국민 건강권을 위해, 잠시 의료를 멈추고 이 잘못된 정책이 폐지될 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고 호소했으며, 김택우 회장 역시 “복지부가 강행한다면 우리는 검체검사 전면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궐기대회는 “일차의료 붕괴 정책 즉각 철회하라”는 구호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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