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을 죽인 범인은 벽지 속 비소였다는 가설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 구체화
📢 기사 핵심 3줄 요약
1.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고농도 비소가 검출됨에 따라 독살설이 제기됐다.
2. 19세기 유행한 셸레 그린 안료가 습한 기후와 만나 치명적인 비소 가스를 발생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3. 현대 과학은 나폴레옹의 사인을 단순 위암이 아닌 만성 비소 중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1821년 5월 5일 남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사망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공식 사인은 위암으로 기록됐다. 당시 부검을 담당했던 의사들은 그의 위장에서 커다란 궤양을 발견했으며 이를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 이후 그의 머리카락을 보관해온 후손들과 수집가들의 샘플이 현대 과학의 분석대에 오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1961년 스웨덴의 독성학자 스텐 포슈후부드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정상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비소가 검출됐음을 발표하며 독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연구자들은 그가 유배 생활을 했던 롱우드 하우스의 환경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거주하던 방의 벽지는 당시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비취색의 셸레 그린 안료로 채색돼 있었다. 이 안료는 1775년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발명한 것으로 비소와 구리를 혼합하여 만든 화합물이다. 셸레 그린은 그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 덕분에 벽지뿐만 아니라 의류, 양초, 심지어 과자의 색소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색채 뒤에는 치명적인 독성이 숨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고체 상태의 비소가 인체에 유입되지 않는 한 안전하다고 믿었으나 세인트헬레나의 특수한 기후 조건이 변수로 작용했다.

습한 기후와 미생물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고시오 가스
세인트헬레나 섬은 기후가 매우 습하고 강수량이 많아 실내 벽지에 곰팡이가 번식하기 쉬운 환경이었다. 롱우드 하우스 역시 습기로 인해 벽지가 자주 젖어 있었으며 그 위로 페니실리움 브레비카울레와 같은 특정 곰팡이 균주가 증식했다. 이 곰팡이들은 벽지 안료에 포함된 무기 비소를 섭취하여 대사 과정을 거친 뒤 휘발성 유기 비소 화합물인 트리메틸아르신 가스를 배출한다. 이 가스는 훗날 이를 발견한 이탈리아 화학자 바르톨로메오 고시오의 이름을 따 고시오 가스로 명명됐다.
나폴레옹은 폐쇄된 방 안에서 매일 밤 이 무색무취의 독성 가스를 흡입하며 잠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소 가스는 호흡기를 통해 혈류로 직접 침투하여 인체의 대사 기능을 마비시킨다. 그가 유배 기간 중 호소했던 만성적인 복통, 극심한 피로감, 다리의 부종, 그리고 피부의 변색 등은 전형적인 만성 비소 중독의 증상과 일치한다. 특히 비소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 과정을 방해하여 신체 기능을 서서히 저하시키는 특성을 지닌다.
머리카락 분석을 통한 비소 농도의 시계열적 변화
과학자들은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샘플을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으로 정밀 검사했다. 이 기법은 시료를 파괴하지 않고도 극미량의 원소를 측정할 수 있는 최첨단 방식이다. 분석 결과 그의 머리카락에서는 비소가 주기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패턴이 확인됐다. 이는 그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비소에 노출됐음을 시사한다. 특히 사망 직전 수개월 동안의 비소 농도는 일반적인 수치보다 최대 100배 이상 높게 측정되기도 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영국 정부나 나폴레옹의 측근이 그를 독살하기 위해 음식에 비소를 섞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벽지 가스설은 보다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노출을 설명하는 유력한 근거가 됐다. 1980년대에는 롱우드 하우스에서 실제로 사용됐던 벽지 조각이 발견됐는데 분석 결과 상당량의 비소가 함유돼 있음이 실증됐다. 이는 나폴레옹이 의도적인 암살이 아니더라도 주거 환경 그 자체에 의해 서서히 중독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위암과 비소 중독의 복합적 작용에 의한 사망
2008년 이탈리아 핵물리연구소는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와 아내 조세핀의 머리카락까지 함께 분석했다. 놀랍게도 그들의 머리카락에서도 현대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비소가 검출됐다. 이는 19세기 당시 비소가 일상생활 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비소 중독만으로 나폴레옹의 사망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최근의 의학적 견해는 나폴레옹이 앓고 있던 위암이 비소 중독에 의해 급격히 악화됐다는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비소는 강력한 발암 물질로 작용하며 면역 체계를 붕괴시킨다. 나폴레옹의 부친 역시 위암으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어 유전적 요인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비소 가스 흡입은 위장의 궤양을 악화시키고 암세포의 증식을 가속화하여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 자연주의의원 신영태 원장에게 듣는 나폴레옹 사망 미스터리 궁금증
Q: 비소 중독이 인체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A: 비소는 세포의 에너지 대사를 담당하는 효소들과 결합하여 그 기능을 정지시킨다. 만성 중독 시 소화기 장애, 피부 각화증, 신경염 등이 나타나며 장기적으로는 간, 폐, 위 등에 악성 종양을 유발한다. 나폴레옹이 겪은 극심한 복통과 쇠약함은 이러한 병리적 과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Q: 벽지에서 어떻게 가스 형태의 독성이 배출될 수 있는가?
A: 19세기 벽지에 쓰인 셸레 그린은 무기 비소 화합물이다.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벽지에 곰팡이가 피면 이 미생물들이 비소를 메틸화하여 휘발성인 트리메틸아르신 가스로 변환시킨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 가스를 장기간 흡입하면 치명적인 내부 장기 손상을 입게 된다.
Q: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발견된 비소 수치가 어느 정도로 높았나?
A: 1960년대 분석에서는 현대 기준치보다 약 10배에서 100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다만 19세기에는 안료 외에도 와인 보존제나 약품 등에 비소가 흔히 쓰였기 때문에 생활 환경 전체가 비소 노출원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Q: 최종적인 사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 있는가?
A: 부검 기록에 나타난 위장의 천공과 종양 상태를 볼 때 직접적인 사인은 위암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비소 중독이 신체 저항력을 극도로 떨어뜨리고 병증을 심화시킨 보조적 사인이라는 점에는 의학적 이견이 거의 없다. 즉 환경적 요인과 질병이 결합된 복합적인 사망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생활 속 화학 물질의 위험성
나폴레옹의 사망 사례는 과거 인류가 화학 물질의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에서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셸레 그린은 나폴레옹 사망 이후에도 수십 년간 유럽에서 사용되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그 위험성이 입증되어 퇴출됐다.
현재 세인트헬레나의 롱우드 하우스는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으나 당시의 비소 벽지는 모두 제거된 상태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밝혀진 이 미스터리는 단순한 음모론을 넘어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환경적 요인이 한 시대의 영웅을 어떻게 몰락시켰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