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 진료의 성공 조건, 상시 허용보다 ‘진료 경로’, ‘지역성’, ‘대면 진료 병행’ 등 안전장치 마련이 선행되어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프랑스의 비대면 진료 규제 현황을 분석한 이슈브리핑을 발간하며, 국내 비대면 진료 법제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시 허용 자체가 아닌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필수조건의 디테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비대면 진료가 대면진료의 보조 수단이라는 원칙 아래 세 가지 필수조건을 충족해야만 안전한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은 이러한 안전장치 없이 상시 허용과 플랫폼 관리만 논의하고 있어 오히려 이전 국회의 논의 수준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 유사한 의료 환경… 프랑스 비대면 진료 규제 살펴볼 가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비대면 진료 법제화 과정에서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필수조건에 관한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프랑스 사례로 본 비대면 진료, 중요한 것은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필수조건의 디테일」 이슈브리핑을 발간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프랑스가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여 활발하게 활용하는 국가 중 하나로, 특히 의료 환경이 한국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프랑스는 물리적 의료접근성 문제보다는 대도시 의료 집중 현상으로 인한 의료 분배 문제가 있고, 민간 의료기관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의료정책연구원은 프랑스의 비대면 진료 규제 현황을 분석 대상으로 선정했다.
비대면 진료의 3가지 필수조건: 진료 경로 준수, 지역성, 대면 병행 원칙
이슈브리핑에 따르면 프랑스는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세 가지 필수조건이 충족될 때만 허용하고 있다.
첫째, ‘진료 경로 준수'(parcours de soins coordonné)는 환자가 주치의를 지정하고 등록한 후, 주치의가 환자의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필요시 전문의 의뢰나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는 의료서비스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기본 구조다.
둘째, ‘지역성’ 원칙은 비대면 진료가 지역 단위 조직들(지역보건전문가공동체, 다직종보건의료센터, 지역건강센터 등)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필요시 대면 진료로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셋째, ‘대면 진료 병행 원칙’은 환자를 비대면 진료로만 진료하거나, 의사가 대면 진료 없이 비대면 진료만 전담하는 것을 금지한다. 특히 의사의 전체 의료 행위 중 비대면 진료 비율은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최대한도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가 이 세 가지 필수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대면 진료를 하는 것은 의료 윤리와 공중보건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며, “이를 무시하고 진료할 경우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의사가 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중개 비대면 진료, 프랑스는 엄격한 규제 적용
최근 프랑스에서는 상업적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진료가 증가하며 필수조건 준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환자와 의사 간 신원과 위치 확인 의무화, 비대면 진료 후 주치의에게 진료 내용 요약 전달 의무, 의사의 경력과 활동을 상업적 목적으로 광고하거나 홍보하는 행위 금지, 플랫폼이 환자로부터 진료비를 청구해 의사에게 보수 형태로 지급하는 행위 금지, 플랫폼 이용 관련 환자 구독료 청구 금지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프랑스에서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완수단이라는 기본적 원칙 아래, 비대면 진료는 필수조건을 갖춘 상태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비대면 진료는 의료 윤리와 공중보건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비대면 진료 법제화, 안전성 논의 없이 상시 허용만 추진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 3월 국회 보건복지위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서 비대면 진료 상시 허용과 온라인 플랫폼 중개 관리·감독 근거 마련만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이 법안에는 비대면 진료 상시 허용과 온라인 플랫폼 관리·감독 외에 안전한 비대면 진료를 위한 필수조건들(대상 환자 범위, 대상 질환 범위, 의료기관 범위, 의료법의 법적 책임 등)과 같은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21대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 허용 논의 수준에서 한 단계 진척하여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과정에 도달했던 것에 비해, 오히려 비대면 진료 초기 논의 과정(허용 여부)으로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비대면 진료를 위한 디테일한 논의 필요
의료정책연구원은 “프랑스와 같이 비대면 진료에 적극적인 국가들은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완 수단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모두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기준과 조건들을 규정화하고, 현실에 맞게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비대면 진료 법제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비대면 진료의 허용 자체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비대면 진료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들에 대한 디테일한 논의”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의료공급자인 의료계의 역할과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며 “더 이상 의료계와 논의 없는 정책 시행으로 인한 실패는 있어서는 안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 도입 전 검토해야 할 안전장치는?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듯 비대면 진료 도입에는 안전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조건과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 맞는 진료 경로 시스템 구축, 지역 의료체계와의 연계, 대면·비대면 진료의 적절한 비율 설정 등 세부적인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의료계와 정부, 국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대면 진료 체계를 구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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