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설치법, 의료계 반발 속 강행… 독립성과 전문성 보장 미흡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설치법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해당 법안이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보건복지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의료인력 수급추계를 담당할 위원회를 공식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협은 위원회의 독립성·자율성·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기존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의협은 보정심이 이미 의료계에서 신뢰를 잃은 기구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중심으로 수급추계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은 의료계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위원회 구성에서도 의료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소조항 추가로 문제 심화될 가능성 지적
의협은 이번 개정안이 단순한 법제화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의료계의 의견을 배제한 채 의료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개정안에는 각 단체가 위원을 추천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추천한 인원으로만 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는데, 이에 대해 의협은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위원 구성이 이뤄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개정안에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대학 총장이 정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부칙이 신설됐으나, 이는 사실상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는 게 의협의 해석이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은 의료인력 수급추계센터를 정부 출연기관이나 공공기관으로 한정하면서 정부 개입의 여지를 더욱 넓혔다며, 의협은 전문가 중심의 독립 기구가 아닌 정부 산하 기관을 통한 운영 방식이 도입될 경우 객관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요국 사례와 정반대 방향… 전문가 중심 기구 필요
의협은 해외 주요국 사례를 예로 들며 의료인력 수급 관리는 정부가 아닌 전문가 중심의 독립 기구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일본, 미국, 네덜란드 등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수급추계위원회를 구성하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각국은 의사단체 등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구조를 유지해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전문가 의견을 배제한 채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의료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의협의 주장이다.
의료인력 수급 정책은 신중하고 과학적인 접근 필요
의협은 의료인력 수급 정책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국가 의료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단기적인 정책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또한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은 의료현장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행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의료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의료공백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법안 통과 전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 필수
의협은 아직 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하지 않은 만큼, 정부와 의료계 간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협은 “의료계가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정책의 합리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정부가 이해해야 한다”며,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료인력 수급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협은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핵심 정책 기구인 만큼 졸속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개정안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보완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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