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구좌읍 해녀 항일 운동의 역사적 발원지와 세계 유일의 여성 주도 투쟁 기록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제주도는 수많은 민중 항쟁의 기록을 간직한 섬이다. 그중에서도 제주 동부의 구좌읍 일대는 1932년 1월 당시 가장 치열했던 민중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현장이다.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여성 중심의 대규모 항일 운동인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의 발원지다.
당시 해녀들은 단순한 어업 종사자를 넘어 생존권을 수호하고 외세의 수탈에 정면으로 맞선 조직적인 투사가 됐다. 현재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등지는 이러한 해녀들의 강인한 정신을 기리는 역사적 성지로 자리 잡고 있으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히 현재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제주 구좌읍 일대에서 시작된 대규모 여성 항일 투쟁의 도화선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의 중심은 구좌읍 하도리였다. 당시 일제는 제주도 해녀 어업 조합을 앞세워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헐값에 매입하고 과도한 수수료를 징수하는 등 경제적 착취를 일삼았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에 분노한 하도리 해녀들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 3인의 여성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당시 하도보통학교 야학 교사였던 강관순은 ‘해녀 노래’를 지어 이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며 후방에서 지원했다. 이들은 일제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매입 가격 현실화와 조합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시위에 돌입했다. 1932년 1월 12일 세화리 장터에서 벌어진 대규모 집회는 섬 전체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는 延인원 1만 7천여 명이 참여한 일제강점기 단일 여성 운동으로는 최대 규모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일제강점기 어업 수탈에 맞선 해녀들의 조직적 저항과 연대 과정
운동은 단순히 구좌읍에 국한되지 않고 성산과 우도 등 인근 지역으로 파급됐다. 해녀들은 일제의 무력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빗창(전복을 따는 도구)을 들고 맞섰다. 2022.01.11. 제주연구원 성기철 박사가 발표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의 가치 선양 및 거점 공간 조성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 투쟁은 단순한 경제권 투쟁을 넘어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민족 해방 운동의 성격을 지닌다.
당시 시위 과정에서 검거된 해녀들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동료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는 굳건한 의지를 보였다. 특히 구좌읍의 지형적 특성상 해안가와 인접한 마을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항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점이 특징이다. 현재 이들의 투쟁은 한국 여성 항일 운동사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세계 여성 운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구좌읍 해녀 운동의 가치
구좌읍 해녀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시도도 활발하다. 2006.08.31. 한국민속학 제44호에 게재된 좌혜경 제주발전연구원 박사의 연구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전개와 역사적 성격] 결과,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은 여성들이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려 했던 경제적 해방 운동이자 민족 자결주의에 기반한 항일 투쟁의 결합체였다는 점이 입증됐다.
또한 2012.01.10. 제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식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장(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주체와 그 역사적 의의]라는 학술적 관점을 통해 “구좌읍은 해녀 항일 운동의 본거지로서, 여성들이 집단적 연대를 통해 제국주의 권력에 대항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구좌읍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인류학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장소임을 뒷받침한다.
현재 구좌읍에서 마주하는 해녀 박물관과 항일 기념탑의 의미
오늘날 구좌읍에는 당시의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제주 해녀 박물관은 해녀들의 삶과 투쟁사를 집대성한 곳으로, 당시 시위에서 사용됐던 도구들과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인근에 세워진 해녀 항일 운동 기념탑은 투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리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청이 2024년 1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약 10만 명 이상의 역사 여행객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에 여성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바꾸려 했던 용기를 되새긴다.
구좌읍의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불턱(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쬐던 장소)들은 당시 투쟁의 모의 장소이자 공동체 의식을 다지던 거점으로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