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공의 수당 주 40시간 기준 확정 판결 이후, 계약상 80시간 무력화한 법정 근로시간 적용에 배상액 100배 폭등… 병원계 “고사 위기”
대법원이 전공의와 체결한 수련 계약상의 근무 시간과 무관하게, 초과 근무 수당은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판결을 내놓으며 의료계에 거대한 파고를 일으키고 있다.
2025년 10월 20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 사건번호 2019다273803)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 등 3명이 병원 운영 주체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이 판결은 전공의를 교육생보다 ‘근로자’로 우선시한 사법부의 판단을 굳힌 것으로, 판결 후 6개월이 지난 2026년 4월 현재 전국 대학병원들의 도미노 수당 소송과 경영 악화의 직격탄이 됐다.

쟁점이 된 ‘주 80시간’ 수련 계약과 근로자성 인정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 등 전공의들은 2014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며 병원 측과 수련 계약을 맺었다. 당시 계약서에는 “주당 수련 시간은 80시간을 원칙으로 하되, 교육 목적 시 8시간 범위 내 추가 실시 가능”하며 “야간당직은 주 3회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전공의들은 2017년 당시 연장·야간근로에 대한 정당한 가산 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계약상의 80시간이 아닌 근로기준법상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초과 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전공의가 훈련생이기에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설령 근로자라 하더라도 급여 외에 추가 수당을 별도로 지급하지 않는 ‘묵시적 포괄임금약정’을 체결했다고 맞섰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전공의들이 병원에서 진료 업무를 수행하며 급여를 받았고 고용·건강보험에 가입된 점을 들어 이들의 근로자성을 명확히 인정했다. 다만 1심은 계약서상 8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 대해서만 수당을 인정해 배상액을 1인당 117만~191만 원으로 책정하는 데 그쳤다.
1.7억 원으로 폭등한 배상액… “주 80시간 약정은 무효”
판결의 흐름은 2심에서 급반전됐다. 2심 법원은 근로기준법상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이 계약서보다 상위 규범임을 분명히 하며, 주 80시간으로 규정한 수련 계약 자체가 근로기준법 제15조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로 인해 초과 임금 산정 기준이 40시간으로 변경되면서 1인당 병원이 지급해야 할 액수는 1억 6,900만~1억 7,800만 원으로 약 100배 가까이 폭등했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심의 법리 판단에 오해가 없다고 보아 병원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의 여파는 2026년 상반기 의료 현장을 강타하고 있다. 2026년 3월 15일 대한병원협회가 발표한 ‘전국 수련병원 경영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판결 이후 유사 소송에 직면한 지방 사립대 병원의 68.4%가 전공의 수당 소급분 지급 여파로 인해 전년 대비 적자 폭이 20.1%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1인당 수억 원대의 소급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학병원들은 재정적 파산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인력 구조의 기형화와 정부 지원의 한계
대학병원들은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과 인건비 폭등에 대응하기 위해 진료지원(PA) 인력을 대거 확충하는 고육책을 택하고 있다. 2025년 5월 시행된 ‘간호법’ 개정안으로 PA 간호사의 업무가 법제화되면서, 2026년 현재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1인당 PA 간호사 비율은 1.25배까지 치솟았다. 서울지역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인건비 부담이 가장 큰 전공의 채용을 줄이고 전문의와 PA 위주로 병원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며 “실제 일부 빅5 병원은 신규 전공의 규모를 10~15%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예산을 증액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2025년 8월 27일 보건복지부는 ‘2026년도 예산안’을 통해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예산을 전년 대비 3,000억 원 이상 증액했으나, 이는 전국 200여 개 수련병원의 임금 소급분과 대체 인력 비용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은 환자 안전을 위한 필수 과정이며, 병원들도 이제 전공의 의존적 구조에서 탈피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계 안팎의 목소리와 정책적 대안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시각은 엇갈린다. 경기도 의정부시 김진석(45세) 씨는 “의사들의 노동권 보호는 당연하지만, 이로 인해 대형 병원 진료 예약이 더 힘들어지거나 병원비가 크게 오를까 봐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수련 비용의 사회적 분담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미국처럼 교육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지원하는 시스템 없이는 대학병원의 파산과 수련의 질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2025년 10월의 판결은 2026년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법적 이정표’가 됐다. 노동권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와 필수의료 유지라는 공익적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투입과 수가 체계의 전면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공의 수급 축소와 수련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